2013. 6. 5. 14:46ㆍ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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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블로그 출입이 뜸했다. ‘영어’라는 크고 흉측한 개구리가 다시 내 삶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잡숴온 개구리는 그 우선순위에 따라 말씀묵상, 독서, 블로그였다. (스페인어공부는 블로그에게 잡혀먹은지 오래다.) 하지만 미국산개구리가 독서와 블로그 사이에 자리 잡았고, 그 양키 놈을 먹는 순간 느껴지는 포만감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던 것 같다.
참고링크: http://changhun.tistory.com/entry/내가-스페인어를-잘-못하는-이유
지난달 22~23일은 도서관이용과 관련해서 학부모모임을 가졌다. 먼저 22일에는 니바끌레족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모임을 진행했다. 나는 라디오에 출연하여 Casa Nivacle에서 5시에 모임이 있음을 알렸다. 선생님들께 부탁해 학교에 등교한 아이들의 공책에도 일일이 모임을 공지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져 델피Delfy선생님께 종을 쳐달라고 부탁했다. (이곳에서는 높이 매달린 종을 뎅- 뎅- 치면 사람들이 모인다.) 종을 치고 기다렸다. 딱 세 분이 들어와 자리에 앉으셨다. 다시 종을 치고 기다렸다. 네 분이 더 들어와 자리에 앉으셨다. 첫 모임은 그렇게 일곱 분의 학부모님들과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니바끌레족 학부모 모임, 아 한 분 어디 간거야 ㅠㅠ
23일은 사정이 좀 나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학부모들이 학교도서관에 관심이 없네, 혼자 구시렁대면서 모임에 학부모들이 앉을 의자도 조금만 준비했다. 과라니족 학부모들은 총 27분이 참석했다. 뒤늦게 의자를 함께 준비하던 파티마Fatima선생님이 말했다. “많이 온 것 같은데?” 마음이 조금 풀렸다. 도서관 일을 진행하며 학교 차원에서 협조 받는 느낌이 전혀 없어 조금 힘이 빠졌었던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학교가 담당하기로 한 독후활동지 양식 복사는 약 두 달이 지난 오늘도 ‘또다비아(not yet)’이다. 동네 복사기 다 고장 났니?
과라니족 학부모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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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는 유명한 인물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부모들이 그 인물들의 이름을 맞혀보도록 했다. 학부모들은 단 한사람도 맞히지 못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인물의 이름을 알려주었을 때 ‘아하~’ 소리조차 듣기 힘들었다. 참고로 그들의 이름은 나폴레옹, 에디슨, 링컨, 빌게이츠였다.
그들은 모두 독서가였다. 단순한 책벌레가 아닌 지독하게 책을 사랑한 이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사람들이었다. 노벨상수상자 오스트발트Ostwald가 발견한 성공한 사람들의 두 가지 공통점도 공유했다. 그가 발견한 성공자들은 모두 긍정적인 사고를 지녔으며, 독서하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학부모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가 굉장히 중요함을 전제한 후에 학교도서관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그들의 공통점: 그들은 어렸을 적, 도서관을 읽었다. (PPT)
오스트발트, 삶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공통점: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독서 (PPT)
그런 후에 학생설문조사로 나타난 파견기관 학생들의 독서 실태를 문제로 삼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이끌어냈다. 좋은 책을 공급하고, 독서하는 습관을 가르쳐야 함을 말했다. 책을 공급하기 위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할 것이며, 학교도서관의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충분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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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마치고 어떤 학부모가 5,000과라니(환화1,200원)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사진을 사려는가보다 생각하고 돈을 받아들었는데 아줌마가 “협력하려고Para colaborar”라고 말했다. 일단은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도 ‘매달 모든 학부모가 2,000과라니(한화500원)를 회비cuenta로 기부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아주머니의 이름은 Clementina Lezcano de Flores다. 정말 꽃(flor)처럼 아름다운 이름 아닌가?
또한 모임을 끝내고 몇몇의 학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책을 골라 집으로 빌려갔다. 도서들을 현지인선생님들이 간간이 본인의 수업에 사용하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읽으려는 태도가 부족한 것 같아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이었다. 역시 아이들 교육은 부모를 공략하는 것이 최고다.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언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몇몇의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빌려갈 책을 고르고 있다!
‘학교가 알려주지 않는 세상의 진실(민성원, 위즈덤하우스)’에서 저자 민성원의 멘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원아,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전부 아래로 빠져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콩나물은 알게 모르게 자라지. 책을 읽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아.” 파라과이에 온지 일 년이 넘어간다. 한국에 두고 온 아이들을 훔쳐보니 아주 몰라보게 변해버렸다.
나의 블로그 메인사진을 장식해준 알폰소Alfonso. 1년 사이에 장난감 먹으면서 몰라 볼 정도로 커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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