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1.
아침에 일어나 기분 좋은 날이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내가 좋아하는 차를 끓여 내가 좋아하는 컵에 담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컵 위에 동동 띄어서 후루룩 마셔보자.
- 김효진의 '어른이 된 후'를 내 나름대로 재구성 -
2. 음악. 한국에서 가져온 스피커가 쉴 날이 없다. 요리할 때도, 밥먹을 때도, 샤워할 때도, 볼일을 볼 때도, 심지어 외출할 때도 항상 음악을 켜놓는다. 나의 음악은 서른 즈음의 김광석부터 시작해서 김동률, 김연우, 뜨거운 감자, 그리고 정엽을 거쳐 현재 성시경에 안착했다. 성시경의 간지러운 목소리를 나는 절대 좋아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살다보니 별일이다. 생각보다 들을만하다.
3. 이대로는 안 되겠다. 스페인어 공부를 해야지 하고선 dictionary.com을 찾았다. 이 곳에서 spanish word of the day 구독을 수락하면 매일 새벽 내 메일로 스페인어 한 단어가 도착한다. 도착한 단어들은 바로, veinte(20), conocer(알다), pepino(오이), abrir(열다), cerrar(닫다)... 음, 그래 기초부터?
5일간 오이 하나 건졌다.
4. 임지에서 학교수익사업으로 사진을 팔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해주어서 고맙다. 하지만 살까말까 계속 고민만 하는 사람들, 예약만 해두고 절대 구입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파티마Fatima 선생님이 진담처럼 한 어머님에게 말했다. “아니 진짜 살거에요 안살거에요? 안살거면 칠판에 사진 붙여놓고 아무한테나 팔거에요.” 그 어머님은 잠시 후에 선생님 댁으로 직접 찾아왔다. “제가 살게요!”
Que buena vendedora!
사진을 좋아하는 파티마Fatima 선생님. 일하고 있는 모습 설정샷이다 :)
5. 길을 걸어가는데 가방 속에서 소리가 난다. ‘카톡!’ ‘카톡!’ 응? 카톡 메시지 왔나보다. 누굴까? 근데 여기가 와이파이존일 리가 없다. 마치 군복 오른쪽 바지에서 가끔씩 진동이 왔던 것처럼. 있지도 않은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려고 손을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어봤던 것처럼. 패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6. 카레를 접시에 담아 비닐랩으로 씌운다. 내일 또 먹어야지! 참치도 깻잎 통조림도 남아 비닐랩으로 정성스럽게 씌워 냉장고에 넣어둔다. 비닐랩의 사용빈도로 알 수 있다. 지금 얼마나 집안일에 심취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7. 학교에서는 나를 컴퓨터 기사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컴퓨터에 비루스virus가 많다고 오늘 다시 한 번 컴퓨터 손보자고 했다. 바이러스도 들어올 구멍이 있어야 들어올 텐데.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인터넷을 하는 것도, 유에스비usb도 사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바이러스 불쌍하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뎅기모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컴퓨터실에서 나오기 전에 비닐로 본체를 꼭 덮어두길 참 잘했다.
8. 지난번 분노의 블로그질에 많은 친구들이 반응해주어서 재밌고 고마웠다. 위로 아닌 위로, 진심이 담긴 걱정, 연애의 권유, 탈영의 권유, 나의 지난 과거에 대한 질문, 나의 잘못된 어휘사용에 대한 비판.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포스팅 이후 수분내로 전화를 걸어준 다니엘Daniel이 고맙다. 하지만 수수께끼 하나를 내지.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해야 할 시기?
9. 다 닫았나? 열어놨던 창문들, 가스밸브, 질질 새는 수도꼭지, 형광등에 흐르는 전류, 그리고 내 바지 자크까지... 이상 무? 그럼 외출 가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