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 이유
1. 하루 종일 바쁘고 분주하게 일한 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 오늘 정작 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네?’ 늦은 약속 시간 때문에 빠르게 뛰어서 지하철에 세이프SAFE!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아, 반대편 지하철을 탔어야 했군.’
2. 나에게만 일어났던 일들이었을까? 어쨌든 무조건 빠르게 살기보다는 ‘잘’ 살아보겠다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나는 한 권의 책에서 얻었다. 바로 내가 로망하는 글 솜씨를 지닌 강인선 기자의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에서 말이다.
3. 강인선 기자는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저 개구리를 먹어라(Eat that frog)’의 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발췌해서 설명했다. 급한 일보단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고!
- 개구리 먹는 비법 -
첫째, 개구리는 아침 일찍 먹어야 효과가 좋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어도 좋고,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자마자 먹어도 된다. 하지만 늦으면 늦을수록 효과는 줄어든다.
둘째, 개구리가 여러 마리 있을 때는 그 중에서 가장 흉측하고 커다란 놈부터 잡아먹어야 한다. 작은 개구리 몇 마리 잡아먹고 나서 개구리를 제대로 먹은 체 하면 안 된다.
셋째, 그러면 큰 개구리는 도대체 어떻게 먹느냐. 코끼리를 먹는 방법과 똑같다. 한 입에 차근차근 먹어치우다 보면 코끼리 한 마리도 다 먹을 수 있다. 제 아무리 커다란 개구리라 해도 그런 각오로 달려들면 다 먹을 수 있다.
(여기서 개구리라는 건 죽어도 하기 싫지만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그런 일을 비유해서 일컫는다.)
강인선,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강력추천!!
5. 나는 교직생활을 시작하면서 개구리 먹는 비법을 실천했다. 출근을 하면, 교탁에 앉아서 내 업무노트에 중요한 일과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일들을 분류했다. 그리고 중요한 일에 속한 업무들을 우선순위에 맞추어 번호를 달아 놓은 후, 그 순서대로 일을 처리했다. 결과는 아주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6. 그래서 KOICA 봉사자의 삶을 시작하면서도 나는 파라과이산 개구리들도 잘 잡아먹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생각한 개구리의 크기와 흉측한 정도는 아래와 같다.
(1) 성경읽기(맥체인 성경읽기 표에 따라서)
(2) 독서2시간(아무거나 닥치는대로)
(3) 스페인어공부(회화문장 외우기)
(4) 스페인어영화보기(한 영화를 반복해서 보기)
7. 그래서 하루가 시작되면 성경부터 부지런히 읽는다. 그래야 독서도, 스페인어 공부도 할 수 있다. 역시 효과적이었다. 크고 흉측한 것들부터 차근차근 먹어치운 공로로 나는 파라과이에서 성경일독을 거의 완료했고, 약 150권의 책을 잡식할 수 있었다.(독서량은 생각보다 미비했지만, 현지적응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수치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8. 문제는 스페인어였다. 늦은 밤이 되면 나는 전형적인 용두사미(龍頭蛇尾)형 인간으로서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성경도 읽었고 독서도 완료했네. 이제 스페인어 문장을 외울 차례구나. 하지만 이미 밤은 늦어버렸고, 난 무진장 졸리웁다. 내일 일찍 출근도 해야 하는데...... 가만 생각해보자. 잠을 적게 자면 외지에서 아프겠지? 아프면 가족도 없이 혼자서 서럽겠지? 서러우면 막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겠지? 안되겠다. 건강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잠에 들자.’
9. 다음날 해가 뜨면 나는 또 다시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늦은 밤이 돌아왔을 때, 나의 졸림을, 아침출근을, 아픔을, 아픔이 주는 서러움을, 그리고 고향을 생각하다가 다시금 나의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잠에 드는 것이다.
10. 지금 밤 12시가 살짝 넘었다. 스페인어 문장을 외워야 하는데 나는 몹시 졸리기 시작했다.
11. 알라삔따!
냉장고에 붙여둔 나의 개구리 목록. 마지막 la misma luna는 멕시코의 영화인데, 지금까지 딱 2번 보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