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사탕은 누가 다 먹었을까?
MBTI 검사는 나를 ‘INTP, 아이디어 뱅크’로 규정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행동도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는 재미있는 존재들이다. 나도 한 재미 한다. MBTI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의 머릿속은 엉뚱한 아이디어들로 부글부글 끓게 되었다. 하지만 기발한 생각이 있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항상 겁을 먹었고, 시작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완주할 지구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면 일단 저질러보는 것이 중요하다. 저질렀다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창의력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학자들은 창의적인 생각 그 자체는 없다고 했다. 창의적인 성과물만이 있을 뿐. 우리는 피카소의 ‘작품’을 창의적이라고 한다. 김훈의 ‘소설’을 독창적이라고 한다.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아주 기발해서 나의 지적수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 고민이 되었다. 힘들게 도서관을 정리하고(다시 어지럽혀졌지만), 책을 구입하고(아직 몇 권 없지만), 가구를 들여놓으면(아직도 흰 벽이 휑하지만) 뭐하나, 아이들은 내가 기대했던 만큼 도서관에 방문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도서관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생각하던 차에 얼마 전에 읽었던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의 한 부분이 생각났다.
유대인 교사들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사탕과 같이 달콤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를 위해 손가락에 꿀을 찍어서 22자의 히브리 알파벳 글자를 따라서 쓰게 한 다음 손가락을 빨아먹게 한다. 히브리 알파벳 모양을 본떠 만든 과자를 준비해 먹이기도 한다. 공부는 과자처럼 달콤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이미지를 배움을 시작하는 나이부터 각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중세 시절에도 있었다. 아이가 세 살이 되면 꿀로 만든 칠판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적어 어린이들이 그 글씨를 혀로 핥으며 깨우치게 하거나 꿀과자를 만든 알파벳으로 글자를 익히게 했다. 어릴 때부터 배우고 익히는 것, 지식을 확대하는 것은 꿀처럼 달콤하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풍습이다. -부모라면 유대인처럼(고재학, 예담프렌드)
‘도서관에 방문해서 책 한 권을 읽으면 준비된 카라멜 하나를 먹을 수 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탕은 한 봉지에 얼마지?’, ‘너무 빨리 먹으면 어떡하지 혹은 사탕 따위는 거들떠도 안보면 어떡하지?’, ‘구성주의 교육의 시대에 너무 행동주의적인 발상 아닌가?’ …… 고민고민 열매를 먹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컴퓨터로 간단한 스페인어 문장을 프린터하고, 집에 굴러다니는 상자 하나에 사탕을 가득 담고 출근했다.
Colgate 치약상자의 변신
'책은 정신을 위한 맛있는 과자입니다. 책을 한 권 읽은 후에, 사탕 하나를 먹을 수 있습니다. Un libro es el dulce para la mente. Despues de leer un libro, se puede comer un dulce.' 사탕을 가득 담아 아이들에게 보여주자 몇몇이 설레는 얼굴빛을 보여주었다. 역시 시도해보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나니 나도 괜히 설렜다. 아이들은 내가 얼마나 심오한 생각 끝에 이런 유치한 결정을 내렸는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열흘 남짓이 지난 오늘 사탕 박스를 확인해보았다.
Before 그리고 After
그 많던 사탕은 누가 다 먹었을까? 열정 넘치는 아이가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책 읽고 밥 먹고 사탕 먹으며 뜻깊은 독서주간을 보냈을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더 많은 아이들이 조금씩 책을 읽으며 사탕을 고갈시켰을까? 아니다. 그냥 몇 명의 아이들이 책을 슬쩍슬쩍 넘겨보고 나서는 하나씩 집어먹었다. 선생님들이 방심할 땐 한 주머니씩 먹었다. 괘씸스럽기도 하지만, 접근성을 높여보려는 시도이니 아무렴 좋다.
책만 수두룩한 도서관은 별로다. 어찌되든 예쁜 독서문화를 만들어주고 싶다. 일일이 독서수업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구상하는 수업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고 스페인어도 영 자신이 없다. 학부모들을 공략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을 어떻게 하면 잘 공략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그리고 일단 좋은 발상이 떠오른다면 재빠르게 실현해봐야겠다. 어렵겠지만 뭐든지 시도하며 살고싶다.
어떤 사람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동기가 되고, 어떤 이는 돈이, 또 어떤 이는 광범위한 사회적 목표가 동기가 된다. 나는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아이디어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그것이다.
- 마이크로 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알렌(Paul Allen)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