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나는 의미를 찾고 있는 중이다.

강창훈 2013. 9. 14. 05:36

  천장을 보며 걷게 되는 곳이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이다. 서점의 천장을 거울로 만든 깊은 이유는 아직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교보문고에 가면 위에 거울 바라보랴, 마주 오는 사람들을 잘 피해가랴, 고른 책들을 읽어보랴 무척 바빴던 기억이다. 초등학교 때에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미아가 될 뻔 했다. 그 당시 유행이었던 책 ‘윌리를 찾아라’에 탐심 가득한 눈길을 오래 보내주다가 그만 엄마를 놓쳐버렸던 것이었다. 안내원에게 기준이 될 만한 위치를 물어보아 엄마를 찾을 수 있었지만, 긴장했는지 꽤나 숨을 가쁘게 쉬었던 것 같다. 이 에피소드 덕분에 ‘윌리를 찾아라’는 결국 내 손에 들어왔지만 말이다.

교보문고 천장보고 찍은 사진, 촌스러운 걸 보니 대학교 1학년쯤이다.

윌리를 찾아라! 내가 점마 찾느라고 고생한걸 생각하면...

 

  살면서 교보문고의 혜택을 많이 보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로 특히 많이 활용했다. 제약 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 덕분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도 문제가 전혀 없었고, 친구들이 예상 외로 약속시간에 늦을 때도 쉽게 용서해줄 수 있었다. 방학이나 휴일에도 자주 교보문고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시간을 죽이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곳 파라과이에서도 교보문고의 이북ebook 서비스인 '샘Sam'을 통해 한달에 12권씩 책을 공급받고 있다. (물론 이 서비스에 불만이 없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며칠 전, 교보문고의 창립자, 대산 신용호 선생의 삶을 ‘책에는 길이 있단다(김해등, 샘터)’를 통해 만나보았다. 소년시절 천일독서를 마치고, 신용호는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무의미한 일확천금을 추구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사업가! 그는 소 팔고 집 팔아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우리네 부모들을 보며, 민족적 사업으로 ‘교육보험’을 발명했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교육을 위해 작은 금액을 지속적으로 보험에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자녀들이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는다 하더라도, 가정 경제가 폭삭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방어막을 튼튼히 쳐준 것이었다.

책에는 길이 있단다, 아동도서이지만 추천추천!

 

  지난 7월부터 학교도서관 추가도서구입을 위한 학부모기부를 실시하고 있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고, 협력하고자 하는 학부모들에게 1,000과라니(한화250원)~5000과라니(한화1,250원) 정도 매달 기부해줄 것을 요청했다. 봉사자가 오히려 돈을 요구한다고 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파견지역Santa Teresita의 사람들을 보며 가장 마음 깊이 느꼈던 점은 ‘그들 특유의 가족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었고, ‘엄마들의 자녀에 대한 무한정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부담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8,000과라니(한화4,500원)를 9달 무이자 할부로 기부하라. 그렇다면 수백 권의 책을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공짜로 보게 해주마!’ 얼마나 매력적인 제안인가!

  참고링크: http://changhun.tistory.com/66 (파라과이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방법)

 

  현재 9월 13일, 약 130명의 학부모님들이 학교도서관 추가도서구입을 위해 평균 2000과라니(한화500원)씩 기부해주고 계신다. 기부를 시작하는 7월에는 참여하는 학부모의 수가 약 5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추세라면 곧 200명을 넘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학교 전교생의 수는 약 300명이다.)

  하지만 이곳은 파라과이! 문제는 하루에 네다섯씩 기부금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정해진 날에 일사불란하게 기부금을 가져오면 일처리가 참 편리하고 좋을 텐데! 나는 매일 그 꼬깃꼬깃한 돈과 기부금 신청서를 받아들고 한숨을 크게 내쉰 후, 이사람 저사람 물어가며 내가 알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필체를 해석한다. (기부금 신청서에는 학부모와 학생의 이름을 적게 되었는데, 혼자서 읽어내기가 정말 힘들다. 이름은 또 어찌나 길고 복잡한지, 강세도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 한다.) 그 다음 내 파일file에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기부금 목록을 정리하고, 학생을 통해 보낼 기부금 봉투를 제작한다. 이렇게 일하다보면 몇 시간이 꼬빡 지나버리는데, 내 손에 쥐어진 금액은 고작 8,000과라니 정도(한화2,000원)! 내가 우리나라 돈 2,000원 벌자고 이렇게 하루하루 고생하나 싶은 것이다.

기부금 정리파일과 봉투sobre

열심히 읽어라! 파견기관에 독서교육과정 추가, 3학년 학생들과 담임선생님 Zunilda

 

  하지만 나는 의미를 찾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마을에서 돈 자체를 협력colaborar했던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협력모델을 창조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몇몇이 ‘다빗, 내가 너의 책을 읽어도 되니? David, puedo leer tu libro?’라고 물어본다. 백날 이건 내 책이 아니라 학교의 책이고,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진정한 의미 전달이 어렵다. 하지만 9달 동안 학부모기부 제도를 잘 운영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내 책들은 얼마 되지 않아 자신들의 엄마아빠가 사준 소중한 책이 될 것이다. 결국 내 손에 들어온 '윌리를 찾아라'처럼 말이다.

  다음 주에는 두 달 기부금으로 모인 50만과라니로 책을 조금 사와야겠다. 그리고 라벨지에 Por la colaboracion de los padres(부모님들의 협력으로)라고 쓴 후에 백 만년 동안 떨어지지 않게 책에 '딱' 붙여두어야겠다.

 

  나는 의미를 찾고 있는 중이다.

  파라과이 차코에서 대산 신용호 선생을 생각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