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누군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강창훈 2013. 9. 30. 03:54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불안하다.

  코이카 동료단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래도 좋겠어요. 임기마치고 한국에 가시면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잖아요.” 그렇다, 내년 8월 임기를 마치기만 하면, 나는 당장 9월부터 몸담을 평생직장이 예약되어 있다. 하지만 혼자 조용히 고민할 시간이 많아서일까? 나는 굉장히 불안하다. 아니, 불안하다 못해 무력감을 느낀다.

  한국의 친구들과 카톡으로 대화할 때가 많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불안하다. 대학생은 대학생대로, 입시생은 입시생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취준생는 취준생대로, 회사원은 회사원대로 몹시 불안하다. 아프니깐 청춘이다, 청춘은 불안과 막막함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아무리 청춘 청춘해도 도리어 되묻고 싶어진다. 나는 어떤 꽃이냐고, 아름다운 빨간 장미꽃인지, 의외로 예쁜 할미꽃인지 아니면 펴서는 안 되는 배추꽃인지.

현수네 기관에서 찍은 배추꽃! 배추에 꽃이 피면 쓴 맛 때문에 김치를 못담근다고 했다.


  명지대 교수 김정운도 두려웠다고 한다. 겨울들판에 홀로 남겨진 이등병 김정운은 제대 이후의 삶을 생각하다, 총구의 끝을 목에 댔다고 했다. 하지만 덜컥, 총구가 목에 달라붙어버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그것이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를 죽음 문턱에까지 몰고 갔던 것은 전망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이후, 그의 군 생활은 단순해졌다고 했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신나게 노래하고, 최선을 다해 잠자는 걸로. 나의 요즘 생활도 무척이나 단순해졌다.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한국 티비를 시청한 후, 점심 식사를 한다. 멍 때리다가 덥다고 짜증을 한 번 낸 후에 저녁을 먹고, 하루 동안 밀린 설거지를 끝낸 후 잠을 잔다. (설거지가 되어 있어야 내일 아침밥을 성공적으로 먹을 수 있다.)


  하루에 세 번이나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과인 밥 먹기! 이를 수행하고자 어느 날, 나는 밥솥을 열었다. 혼자서 한 끼를 때우기에는 조금 부족한 양의 밥이 남아있었다. 나는 이걸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고민(x100)을 했다.

  라면을 끓여야하나, 수출용 라면은 맛이 없는데, 라면의 유통기한이 지나기도 했는데, 아니야 라면은 유통기한 조금 지나도 문제없을 거야. 하지만 라면을 남아있는 밥과 함께 모조리 먹어버리면 지나치게 배부를 수도 있다. 아니면 밥을 조금 먹는 대신 소시지를 더 만들어 먹을까, 아니야 소시지를 더 많이 먹더라도 밥은 포만감을 느끼도록 먹어주어야 할 거야.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수 있겠다. 

  일단 남아 있는 밥을 먹되, 모든 요리를 시작하기 이전에 밥을 먼저 새로 안쳐 놓자. 그리고 밥의 양이 조금 모자란다면 새로 지은 밥을 먹으면 된다. 시간은 얼추 맞을 것이다. 밥의 양이 모자라 결핍감을 조금 느낄 때쯤에는 곧장 새 밥이 아무 문제없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 쌀을 다 씻고, 밥솥의 취사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였다. 몇 십 분간의 정전! 나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이상하게도 왠지 모를 후련함을 느꼈다. 기분 좋게 어둠 속에서 밥을 먹었다. 배도 부른 것이 푸지게 잘도 먹었다. 

  누군가 나의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욕심이 지나치게 많은 걸까. 선택할 수 있어서 괴롭다.


에라 모르겠다, 방전.

헤롱 헤롱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