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훈 2013. 10. 1. 06:28

 지난 주 월요일쯤인 것 같다. 교장실에서 오후반 교감선생님인 라껠Raquel과 투닥거리는 나에게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비드, 이번 주 금요일은 휴교야.”

  “휴교? 왜?”

  “차코랄리rally(차코 지방에서 하는 자동차 경주)가 있거든.”


  아, 벌써 또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구나. 작년 이맘때쯤, 도로 주변에 붉은 깃발들이 올라가는 걸 보고 여기서 자동차 경주라도 하겠다는 건가, 생각했었다. 작년 차코랄리 때에는 현지 적응도 덜 됐고, 외부인이 잔뜩 유입되는 기간이라 조금 위험하다기에 바깥출입을 자제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고니찌와! 고니찌와!’하며 장난치는 모습이 눈꼴사납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 뭐 대단하게 자동차 경주를 하는건 또 아니다.

랄리 기간에는 정말 많은 외부인이 찾아와서 야외에 텐트를 치고 생활한다.

주유소에도 사람들로 가득!

랄리기간에만 시청 앞에 노점상들이 들어섰다.


  나는 올해가 랄리를 구경할 수 있는 마지막 해이니 놓치지 말고 꼭 봐야겠노라, 하며 길을 나섰다. 하지만 올해에도 어김없이 허탕이다. 새벽 6시에 이미 다 출발해버렸다고... 역시 파라과이는 아침형 인간들의 나라다. 닭도 새벽 3시에 우렁차게 울어 재끼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랄리는 우리 동네의 폐쇄된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차코 지역의 잡목 숲monte을 달린다. 사실상 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랄리의 모습은 출발 장면인데, 글쎄 그걸 놓쳐버린 것이다!

  그래도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괜히 이것저것 찍으면서. 그리고 나무그늘에 모여 있는 동네 사람들을 발견했다. 눈에 익은 우리학교 아이들도 몇몇 보였다. 그들에게 별로 상관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나는 미안함에 멀리서 몰래 사진을 찍고 얼른 자리를 떴다. 생경한 풍경이 나는 너무나도 불편했다. 

지역 주민들이 쓰레기를 모으다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다.

랄리가 출발하는 폐쇄된 버스터미널. 주어갈 것을 찾고 있는 인디오 아주머니들.



  코이카 단원들은 자신의 신세한탄을 이런 식으로 한다.

  “에휴, 저희 집은 하도 시골campo이라서…”

  “집이 너무 멀어요, 버스 교통편이 너무 안 좋아서요. 에어컨도 없고…”

  “거기 도시는 차라리 낫죠. 우리는 정말 형편없어요.”


  다들 무럭무럭 급성장한 한국산 봉사자들로서, 어느 도시가 가장 열악한지, 자신의 파견지역이 얼마나 열악한지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도 파라과이에서 살만큼 살면서, 나 나름대로 잘 개발된 도시란 도대체 어떤 곳인지,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그 기준은 바로 그 도시에서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빈부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가, 였다. 물론 빈부의 격차가 클수록 잘 발전된 도시이다.

  과거 아순시온 센트로, 우루과이 공원에 서서 좌우를 둘러보면 느낄 수 있다. 한편에는 은행과 상점, 빌딩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빈민층들이 아무런 희망 없이 거리에 앉아있었다. 굉장히 무서웠던 기억이다. 나의 잘 개발된 도시에 대한 기준이 올바르다면, 아순시온은 파라과이 최고의 도시가 틀림없다. 한국의 서울도 마찬가지다. 최상위계층의 삶을 보면, 서울은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최첨단 도시임에 틀림없다.


  이틀 동안 진행된 차코랠리, 수많은 외부인들이 유입됐고 그에 따라 많은 물자들도 따라 들어왔다. 덕분에 도시는 그만큼 부유해졌고, 발전했다. 하지만 이 곳 사람들은 이상하게 더 가난해졌고, 결핍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남들과 비교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덜 행복하게 되었다. 동네의 주인으로서 마음껏 쓰레기를 땅에 버리다가, 이제는 부지런히 떨어진 쓰레기를 주어 모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