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카톡 메인이 되고 싶다.
이 곳 Santa Teresita 임지에 파견되기 전의 일이다. 나는 선임단원인 현웅이형의 전화를 받았고, 대뜸 파견 기관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전화기로 넘어왔다. 나보고 'Antonio(안토니오)'란다. 아니, 현재 내 이름은 'David(다비드)'인데, 안토니오가 웬말인가. 사연인즉슨 이 곳 선생님들이 내가 오기 전에 나의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열심히 'Antonio David (안토니오 다비드)' 불렸다.
그다지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안토니오. 나의 이미지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나를 다비드라고 부르게 한 계기는 분명히 있다. 코이카 국내훈련을 하면서, 성경말씀 '시편'을 도서관에서 날마다 깊게 묵상하였고 시편 기자인 다윗을 참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시로써 멋드러지게 표현해낼 줄 아는 문학가였다. 그래서 국내훈련 스페인어 선생님인 Yuri동생이 '풉'하며 웃을때도, 내 이름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누군들 메씨나 까르발료같은 스페인 독특한 이름을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학교에서 나를 다비드로만 부르게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있고, 소정의 성과를 보고 있다. 모든 문서에서도 나의 이름은 오로지 David Kang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를 안토니오라고 부르는 선생님들의 이름을 나도 바꾸어 주었다. 예를 들면 삐레까(인디헤나 간식), 띠헤라(가위), 미스프리마베라(봄처녀) 등등이다. 다소 유치한가? 이 사람들은 참 좋아한다. 이런 유치한 개그.
자기소개 ppt
이름. 참 중요하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서 한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조금 내 이름을 밝히기가 부끄러웠던 면도 있다. 그래서 어디가서 통화할때도 '저기, 저번에 전화드려서 무엇 무엇에 대해서 여쭤봤던 학생인데요.', '안녕하세요, 어디학교 무슨 담당 교사인데요'라고 나를 철저히 익명화시켜서 소개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보통의 글이나 소개하는 말에서 '안녕하세요, 강창훈입니다'라고 내 이름을 먼저 소개하려고 노력한다. 이름은 중요하니깐.
이름은 정말로 중요하다. 성경말씀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사역을 예정하시고, 각 사람의 이름을 바꿔주신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은 친히 지어주셨다. 또, 이름부르기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도 있다. 누구나 알고있는 유명하고 예쁜 시다.
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를 읽으면서, 파견기관의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안한 마음이다. 아이들은 아직 나에게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구나. 외국어라 어렵지만, 조금은 더 노력해야겠다. 나쁜 머리통만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정성이 없다 나란 놈은.
학교 운동장에 있는 큰 나무.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꽃들이 핀다고 했다.
하지만 나무를 돌고 돌아 결국 찾았다. 빨간 꽃 하나!
이런 생각들을 혼자서 되뇌이면서, 결국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행위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여받으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존중받고 싶어한다. 나도 그렇다. 무엇보다 조금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 감동을 주는 어떤 마음 충만한 삶이라고 할까.
그리고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존재 의미를 위해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는 것이 아날로그적 감성적 사고라면, 타인의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에 자신이 메인글귀나 사진으로 존재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하는. :)
내 인생을 통틀어 나는 타인의 카톡에 메인으로 두 번 등장했다. 하나는 한국에서 내가 담임으로 가르치던 학생의 카톡에, 또 다른 하나는 얼마전 우리 둘째 형과 결혼한 형수님의 카톡에... 학생의 이름은 정희이다. 아이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녀석을 무척 귀여워했다. 녀석은 이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몸은 조금 육중하셨다. 그리고 장난칠때마다 바닥에 털썩털썩 주저앉아, 교실이 쿵쿵, 내 마음은 깜짝깜짝이었다. 두 가지 면에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나무 바닥이 망가지지는 않을까. 나무가 육중한 몸의 자유낙하를 견디기라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아이의 무릎이나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선생님다운 생각... 교통사고가 나서 오랫동안 학교에 못나왔지만, 아이들과 함께 병문안도 다니고, 퇴원했을 때는 매일 지각한다고 어리버리하다고 무지 괴롭혀 주셨다.
이놈, 최고 멋진 선생님으로 알아듣겠어!!
두번째는 형수님이다. 다른 포스팅에도 남겨놨지만, 형이 결혼하는데 동생이 되가지고 한국에 가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형수님이 기아대책에서 후원하는 아동을 무려 총 11시간정도 버스를 타고 방문해서 축하 사진을 찍어주었다. 형수님이 고마우셨던가보다. 카톡에 메인으로 등장하셨다.
네, 전 좀 짱.
음, 타인의 카톡 메인에 등장한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속에서 몇번 더 등장해보고 싶은 소망이다. 기분 괜찮더라. 타인의 삶에 의미있게 존재감있게 다가간다는 묵중한 기쁨이랄까. 조금 더 이사람 저사람의 삶에 참견하며 살아봐야겠다. 괴롭히기도 하고, 감동도 주고, 재미있는 사건도 만들고... 그리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얼른하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