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방법
그제와 오늘 많은 학부모들 앞에서 학교도서관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교도서관 학부모연수를 개인적으로 주최했지만 참여율이 저조했다. 고로 성적표를 받기 위해 많은 학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모이게 되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실제로 그제는 약 60분, 오늘은 약 30분의 학부모님들이 참석하셨다) 성적표를 배부하기 이전 나는 학교도서관 사업에 대해서 설명했다.
참고링크: http://changhun.tistory.com/entry/학교도서관-학부모연수를-하다
발표준비를 마치고 한장 찍었다. 꼭 책장수같다.
학교도서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많은 학부모들 앞에서 도서구입을 위한 그들의 경제적인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싶었다. 지난 학부모연수 때에 만들어두었던 프레젠테이션자료를 넘겨보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생각했다. 며칠 전 읽었던 '기획의 정석(박신영, 세종서적)'의 저자가 소개했던 '4MAT'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교육학자 버니스 매카시 박사는 우리의 뇌가 학습할 때 아래와 같은 4단계의 프로세스를 거친다고 했다.
학습의 4단계(4MAT); 당신이 신영이란 학생에게 수학 과외를 한다고 가정하자.
1단계: why
예) 신영아, 네가 왜 이 수학공식을 외워야 하냐면 바로 ○○○○때문이야.
2단계: what
예) 그래, 신영아. 네가 알아야 하는 수학공식은 이런 거야.
3단계: how
예) 신영아, 사실 여기에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근본원리)가 있어.
4단계: if
예) 신영아, 만약에 네가 이걸 다 외우잖아?
그럼 너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될 거야. 난리나는 거지!
- 기획의 정석(박신영, 세종서적)
4MAT의 프레임으로 나의 발표 자료를 분석해보았다. 왜why? 독서는 중요하니깐. 모든 성공자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독서하는 습관을 지녔어.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절대 책을 읽지 않지. 내가 한 설문조사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뭐what? 좋은 학교도서관을 만들어보자고! 어쩌라고how? 학교와 학부모님들과 협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사진을 찍어서 팔고, 학교는 여러 가지 활동으로, 그리고 학부모들은 각자 조금씩 기부를 하는 거야. 꼭 해야 돼if? 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걸?
나는 학부모들이 학교도서관에 조금씩이나마 경제적으로 협력한다면 어떤 '난리'가 일어나게 될지 설명해내야만 했다. '엇, 이거 나 해야겠다'라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좀처럼 난리날 것 같지 않은 검은 배경의 화면에 하얀 글씨로 몇 개의 숫자를 올렸다. 그리고 약간의 산수를 했다.
세 수 300, 2000, 9를 나열하고 차례대로 그 의미를 밝혔다. 300은 파견기관 학생의 수인 300명, 2000은 파라과이 화폐단위인 과라니를 더해 2000과라니(원화 500원 가치), 9는 사업의 남은 기간인 9개월을 의미했다. 이들을 차례대로 곱해 총액 5,400,000과라니(한화 140만원 가치)를 뽑아냈다. 다시 책의 평균 가격 30,000과라니로 나누었다. 최종결과로 180권이 나왔다. 다시 한번 질문했다.
꼭 해야 돼if? 응, 꼭 조금씩이라도 기부해야해. 한 달에 네가 2,000과라니씩 꾸준히 보태준다면 사업이 마무리되는 9개월 후에는 그걸로 180권의 책을 구입할 수 있어. 이건 아주 읽기 충분한 양이지! 경제적으로 생각해봐도 아무 손해가 없어. 18,000과라니(한화 4,500원의 가치)를 9개월 무이자 할부로 계산하면 180권의 좋은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건데, 이런 장사가 어딨냐?
자신들을 도와주러 왔다는 인간이 오히려 돈을 요구한다며 나를 당치도 않는 놈으로 생각할까봐 고민이 많았다. 나열한 세 수의 의미를 알리면서 '납부금cuenta'의 개념이 나오자 몇몇 사람들이 피식 웃었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한 건 아닐까하며 발표하면서도 망설였다. 하지만 많은 학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주었고, 오늘은 박수까지 받았다. 그저께 나의 길고 긴 설명 덕분에 퇴근 시간이 늦어져버린 리나Lina 선생님의 핀잔도 받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은 리나Lina 선생님의 남편 오스칼Oscar선생님이 지나치게 말이 많았다. 덕분에 나의 퇴근시간이 늦어졌고, 우리는 웃으며 서로 쌤쌤하기로 했다.)
기대한다. 부담된다.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에서는 추운 겨울 서로 협력해서 눈사람을 만든다며 발표를 마쳤다.
오늘 들어온 기부금들. 돈을 신청서에 스테이플러로 찍은 모습을 보고 푸핫 웃었다. 봉투도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