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 14:30ㆍ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파라과이에서 일 년 넘게 살며 얻은 생활의 노하우!
1달러가 4,400과라니와 맞먹을 때, 빚을 져서라도 환전할 것!
여름방학 기간 환율이 아주 좋았다. 방학 며칠 동안 환전소 전광판의 빨간 숫자들은 그야말로 섹시했기에, 나는 카드를 탈탈 털어 공격적으로 환전할 수밖에 없었다. 뒤도 돌아봐서는 안된다. (외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확실히 존재하나보다.)
여러 군데의 환전소를 쏘다녔다. 특별히 발견한 것이 있다면 환전소의 직원들이 아주 불행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다들 표정의 미묘한 변화 없이 기계적으로 일만 하고 있었다. (특히 마리스깔 쇼핑몰 맞은 편, 불법 경마장을 뒷구리게 운영할 것만 같은 빨간 간판의 환전소 M&D. 대한민국 참빗으로 꼭 10번 머리를 젖혀 올린 듯한, 그래서 평생 정직한 삶을 살 것 같은 아저씨는 그들 중의 과연 ‘끝판왕’이었다. 다들 구경들 가시길!)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돈을 많이 만지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돈이 아닐지라도! 돈이 가진 특별한 마력은 그들이 하루 종일 돈을 만지고 세어보며 일할 때 그들의 행복을 저멀리 내쫓아 버리는 것이다.' 행복심리학을 공부한 사람 누군가는 이를 깊게 연구했으리라. (하루 10만원을 세는 사람보다 100만원을 세는 사람이 더 삶에 부족함을 느낀다, 은행 창구직원은 플로리스트보다 상대적으로 불행하다 등등의 주제 말이다.)
얼마 전에 ‘꾸빼 씨의 행복 여행(프랑수아 를로르, 오래된미래)’이라는 책을 읽었다. 정신과의사 ‘꾸빼’는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세계를 여행한다. 그리고 ‘행복은 이런 것이로구나!’ 깨달은 문장들을 ‘배움’이라는 타이틀로 달아 메모해간다. 그 중 나의 파라과이 삶에 비추어 ‘과연 그렇다!’ 할 만한 것이 과연 하나 있었다.
배움13_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밤중에 조그만 동네슈퍼에 들렀다. 슈퍼아저씨가 물었다. “영어 할 줄 아니?” “(혹시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할 수도 있으므로) 응 근데 어 리틀빗 노마스야.” “그럼 잠깐 기다려!” 하고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태국 아줌마를 데리고 나왔다. (이 태국 아줌마는 독일인과 결혼하여 우리 동네에서 레스토랑 운영을 돕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술만 마시면 그녀를 심하게 폭행했고, 지금은 이웃집으로 도망 나온 상태였다. 일단 차분하게 그녀의 사연을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주인집 아저씨는 “너가 태권도로 물리쳐줘!”하며 온갖 기합으로 농담질을 했다. 마음도 좋으셔라!)
결국 나는 다음날 그녀와 함께 경찰서에 갔다. 변호사도 만나고, 의사도 만났다. 그리고 나의 영어, 스페인어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도덕적인’ 통역을 했다. 내가 사람이므로, 그리고 내가 이 바닥에서는 영어가 아주 짱이므로. 그렇지만 내가 도움이 되면 얼마나 됐겠는가. 먹고사는 상놈 스페인어만 쓰다가 배운 사람들의 어려운 스페인어를 이해하자니 처음부터 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괜히 뿌듯하고 설레는 기분은 무엇이었을까. 이 맛에 인권변호사들이 돈 못 벌어가며 일하는구나 생각도 들면서 말이다. (물론 나는 이 사건으로 우리 동네 유일한 레스토랑에 눈치를 보며 가게 되었다.)
각자의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코이카 단원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때가 좋았어. 아, 파라과이로 돌아가고 싶어!” 문명의 이기로 보나 뭐로 보나 한국만큼 살만한 곳이 없는데, 왜 다들 파라과이를 그리워하는 걸까? 한국은 워낙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혹시 한국에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탓은 아닐까? 좋고 유용한 것들이 넘치고, 돈만 있으면 필요한 서비스를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발달한 사회에서는 나만의 뛰어난 효용가치를 보여주기가 아무래도 어렵다.
다른 봉사단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곳에서 허접하게 영어를 스페인어로 통역해놓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서 행복했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못하는 선생님에게 고작 ‘복사하기→붙여넣기’를 가르쳐놓고는 정말 뭐라도 빌게이츠라도 된 기분이었다. 학교 프린터 잉크를 충전해주고, 걸린 종이를 제거한 후 ‘나는 더 이상 코이카 봉사자가 아니라, HP봉사자야!’ 하며 씽끗 웃게 된다.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사람들에게 판매할 때, 그들이 ‘너 정말 프로사진사구나. 사진 찍는걸 어디서 배웠니?’ 하며 좋아하면 나의 좁은 어깨가 1mm정도 넓어지는 기분이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컴퓨터 실력도 변변찮고, 사진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나는 지금 행복한 파라과이에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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