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플 땐, 코카콜라를 마셔봐.

2013. 3. 24. 13:14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0. 오늘은 좀 툴툴대겠다.

 

1. 오후 4시, 한 여자가 강변북로를 걸어간다. 오후 2시, 한 대학생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괜히 눈물을 훔친다. 저녁 9시, 한 남자는 자신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누군가에 의해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아프다는 뜻이다.

 

2. 오늘 저녁 6시에 학교로 출근을 했다. 다름 아니라 이 곳 교사양성소formacion docente 선생님들의 졸업식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데 조금 짜증이 났다. 보께론Boqueron 주의 주지사는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항상 전용 사진사를 데리고 다니는데, 그와 나의 포토 존이 자꾸만 겹쳤기 때문이다.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 이상하게 경쟁하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먼저 좋은 자리를 얻게 되었을 때, 나는 대놓고 다리를 넓게 쭉 벌리고 있었다.

내 나와바리다. 다리 벌렸으니 들어오지말어.

 

3. 물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기분 나쁜 일도 아니고.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도 부탁받고 하는 일인데, 사진 찍으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저녁이라 플래쉬를 터뜨려야 하는데 그건 또 어찌나 말을 잘 안 들어먹던지.

 

4. 사실 요즘 좀 힘들다고 한다면 힘들었고, 슬럼프라고 한다면 슬럼프다. 지난 2주 동안의 필라델피아, 아순시온 강행군으로 몸 컨디션은 바닥을 쳤다. 비가 오고 날씨가 제법 추워 따뜻한 물로 씻고 싶었지만 때마침 두차ducha가 고장나서 마음까지 차갑게 샤워를 해야 했다. 배고파서 요리를 하자니 그 많던 가스가 뚝 떨어져 있었다. 어제는 모기님들 덕분에 새벽 4시까지 잠을 못잤다.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때 이과수 폭포라도 놀러가려고 했는데, 돈도 있고 시간도 있지만 체력이 없어서 사실상 접었다. 그냥 한국 집에 돌아가고 싶은 건데, 470일이나 남았다.

 

5. 그냥 짜증났던 거였다. 슬럼프니깐. 그런데 자꾸 주정부 사진사가 귀찮게 하니 아니꼽게 본거였다. 어쨌든 그리고 나는 간식을 먹는 장소로 가서 졸업생들의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사람들이 나를 불렀다. ‘다비드! 사진 찍자. 우리 사진 찍어줘!’ 공간 내부가 협소했기 때문에, 나는 일렬로 쭉 늘어선 이들을 한 프레임 안에 넣으려고 벽에 최대한 몸을 붙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핸드폰 카메라 부대가 등장해서는 열심히 버튼을 눌러댄다. ‘장난하냐 진짜? 왜 찍어주라고 해놓고선 길막인데!'

 

6. 그리고 멍하니 있는 나에게 장학실의 장학관이 와서 묻는다. 'David, sacaste mucho hoy? 다비드 오늘 사진 좀 많이 찍었어?' 아우, 진짜 이걸 확. 에이, 오늘은 집으로 얼른 도망가야겠다.

 

7. 그리고 저녁 9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쁘게 현관문 열쇠를 넣고 돌리려는데, 어라 안돌아간다. 헤헤 이거 왜이래? 한 번 더! ... 진짜 안돌아간다. 사실 현관문과의 악인연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예전 필라델피아에서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저녁 11시쯤이었을 거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았는데, 이게 안 닫힌다. 울고 싶었다 그냥. 그리고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오늘은 일단 의자로 단단하게 밀어두고 그냥 잘까? 도둑도 많이 없고, 나는 배고프고 피곤한데? 하지만 결국 망치랑 드라이버 들고 야밤에 쾅쾅쾅 끼익끼익해서 대충 처리할 수 있었다.

 

8. 그리고 이번 주 목요일이다. 한낮에 슈퍼를 가려고 문을 열고 밖에서 문을 닫으려는데, 이게 안 닫힌다. 이런 젠장할 놈의 문 새끼를 내가 오늘 확... 내가 다른 파라과이 단원들보다 멀리 동떨어져 사는 것 그래 좋다. 가끔 생활비가 모자라서 된장국에 양파도 못 넣어 먹어도 그것도 좋다. 스페인어 안통하고 하루 종일 과라니만 듣는 날도 그래 좋다. 하지만 집안 현관문은 닫혀야 사람이 살 거 아닌가!

 

9. 그래서 역시나 망치와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2시간은 족히 낑낑댔던 것 같다. 때리고 돌려가면서. 아주 임기응변식으로 고쳐 놓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초보 작업자인 내 오른손에는 멍이 이곳저곳 들었다. 드릴이라도 있었음 얼마나 좋았을까. 어제 아침에는 내 오른손이 아프고 저려서 잠에서 일어났다. 아주 만신창이다.

2시간의 노력 끝에 나는 이상한 나무판대기 하나를 비스듬히 붙였고,

벽과 문을 이어주는 마지막 쇠고리를 교체했으며, 열쇠구멍에 기름칠을 했다.

 

10. 그리고 오늘 나의 지혜로운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저녁 9시, 파라과이에서 나는 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늘에는 무심히 별이 반짝이고 주변은 적막하다. 처음에는 막 왼손으로 문의 윗부분을 두드리고 밀면서 오른손으로 열쇠 돌리기를 시도하면서 막 으하하하 웃었다.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조금 미쳐가는구나. 부실까? 부시면 오늘 어떻게 자지? 안에서 안닫힐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거절당하는 기분은 오랜만이네. 오늘 나를 재워줄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래도 어쨌든 문을 열어야 할 거 아냐? ......

 

11. 울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미친놈처럼 으하하하 웃어가면서 열쇠를 돌렸다. 15분이 지났을까. 결국엔 툭. 문이 열렸다. 배가 고팠지만 밥솥에 밥이 없었다. 문이 열렸다는 기쁨도 잠시, 짜증이 올라온다. 잠시 후, 밥을 먹으면서 계속 생각해보았다. 왜 이번 주에 내 마음상태가 메롱인지를. 왜 슬럼프가 왔는지를.

 

12. 혹시 정말 그것 때문일까?

 

13. 밤늦게 나는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문은 당연히 잠그지 않고. 그리고 코카콜라를 구입했다. 미친놈 같지만 사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약 10일간 코카콜라를 끊었는데, 마시면 조금 기분이 나을 것만 같았다. 저녁 늦은 시간인지라 편의점 주변에는 알딸딸한 친구들이 많았다. 얼굴을 알고 있는 한 친구가 다가와 뭘 그리 급하게 집으로 가냐며, 같이 맥주 마시잔다. ‘이런 20살밖에 안된 놈이, 형한테 버릇없이 구는 걸 그냥 진짜 아구창을 돌려버릴까보다.’ 짜증이 치솟는다.

 

14.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콜라를 한잔 마시고, 두잔 마셨다.

 

15. 그리고 나는 기분이 아주 상쾌해졌다. 어떡해 나 아주 미친놈인가봐. 으하하하.

미쳐가는 이 기분 ㅋㅋㅋㅋㅋ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