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2013. 10. 5. 13:22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2010년은 내 인생의 한 해를 똑 떼 내어 임용고사를 준비한 기간이었다. 그 덧없어 보였던 임용고사 공부들이 교사가 되는데 과연 필수적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하지만 교육학을 공부하며 기억에 남는 몇몇 이론들도 있긴 하다. 그 중 하나가 블룸Bloom의 '완전학습' 모형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애들을 가르치긴 했는데, 애들이 정말 이해는 한 걸까?’, ‘몇몇은 잘 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몇몇의 머리는 아직도 하얀 백지구나. 다음 진도를 나가야해 말아야해?’ 교사가 이런 고민에 휩싸였을 때, 블룸은 다음과 같이 처방할 것이다.

  ‘완전학습 하세요!’



  블룸이 설명하는 완전학습이란, 수업에 참여한 95%의 학생들이 수업의 내용을 약 90%이상 학습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김 교사가 30명 학생을 상대로 수업하고 테스트를 쳤다고 하자. 이 때 28명 이상의 학생들이 90점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면 완전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교사의 일회적 수업으로 단 둘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테스트에서 90점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면, 그 교사는 정말 능력 있는 교사일 것이다. 하지만 완전학습이 알려주는 구체적인 수치들은 두 가지 치명적 결함을 지닌다. 첫째, 시험에 낙제한 두 명은 여전히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그 낙제생 중 하나인 영희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바랐던 내 여우같은 딸내미라고. 그런 우리 딸내미를 내버려두고 다음 진도를 그냥 나간다? 이럼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둘째, 시험에 통과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정말 ‘완전’하게 수업 내용을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철수가 90점을 맞아 시험에 통과했다고 치자. 그는 자신 스스로 아주 만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10% ‘부족한’ 불완전한 상태이다. 2%만 부족해도 우리는 꽤나 밋밋함을 느낀다.

  이외에 실제적인 적용이 어렵다는 면도 있다. 교사는 완전학습을 실천하기 위해서, 시험에 낙제한 두 명을 개별 지도해야지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수업을 재시작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실제 교실 현장이 아이들 하나하나 개별화가 가능한 환경이던가? 글쎄,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학습 수준을 세심하게 진단하고 그에 맞춰 지도하는 역량 대신, 아이들 서른 명을 한 ‘학급’이라는 세트로 취급하여 경영하는 시스템적 안목만 늘었다. 요즘 교사는 스승으로서가 아닌, 전문적인 학급 경영인으로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즘 파라과이 파견기관에서 음악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아니 공립학교의 한 구석탱이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면서, 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 음을 바르게 읽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나는 매일 오선지에 무작위로 음표를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음을 적어 오라고 한다. 그러면 하루 이틀 시행착오 끝에 음을 잘 외워서 적는 똘똘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요령으로 지난번 과제를 이리저리 참고하여 음을 적어오는 눈치 빠른 아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그냥 배 째란 식으로 아무거나 적어보고, 두 번째 시도에 승부를 거는 전략적인 아이도 있다.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잘 따라오지 못하면 다시 해 봐, 한다. 그럼 에리카Erica는 처음부터 다시 시도해보지만, 사이디Saydy는 잘 안 됐던 마디만 다시 도전해본다. 오늘 10번씩 연습해, 하면 조아나Joana는 자신이 완벽하게 소화했을 때만 한 번 연습한 것으로 쳐서 시간이 아주 오래 소요된다. 하지만 에벨Ever은 대충 열 번 손가락이 지나가면 그걸로 그만이기에, 연습이 번개처럼 끝나버린다. 아이들의 피아노 책 위에 연필로 설명을 적어가며 가르친다. 그럼 다음 날에 베또Beto는 지우개로 책을 깨끗하게 지워오지만, 리두비나Liduvina는 책이 더 더러워져서 온다. 파멜라Pamela는 차근차근 점진적으로 수업내용을 이해하지만, 로시오Rocio는 지지부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업 내용을 전부 득도해버렸다. 아직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아라셀리Araceli도 있다. (정말 유감이다.)

4학년 아라셀리Araceli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르단 걸 느끼면서, 나는 진짜 ‘완전학습’에 대한 믿음도 가지게 되었다. 그 믿음이란 아이들은 누구든지 수업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살펴보자. 정말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은 다르다.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다르고, 수업 내용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며, 각자 사고하는 방법 역시 다르다. 그러기에 아이들이 수업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완전학습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다수를 상대로 한꺼번에 수업을 진행해야만 하는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튼, 비행기가 떴다. 아라셀리Araceli의 비행기도 언젠가는 뜨겠지.


5학년 베또Beto


4학년 조아나Jo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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