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9. 13:25ㆍ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1. 집집마다 창문은 왜 달려 있는 걸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유 있게 커피한잔을 마시며 바깥 풍경을 보기 위해? 아니면 세상의 눈길이 안을 들여다보도록 허락하기 위한 것일까?
현지훈련때 universidad americana에서 찍은 창문 속 하늘 사진. 파라과이 하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이쁘다.
2. 한국에서 내게 창문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 나를 누군가 창밖에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한 마디밖에 없다.
3. 싸우자
4. 하지만 파라과이는 조금 다르다. 내가 OJT 기간에 사용했던 현지 선생님의 집은 창문이 밖으로 나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약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밖의 누군가가 창문을 활짝 열어버렸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또한 한 마디밖에 없다.
5. permiso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밤풍경은 어두컴컴하다 못해 아주 새카맣다. 저녁에 조금 시원하고 쾌적하게 살아보겠다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우리 집은 눈먼 자에겐 광명이 되고, 길 잃은 뱃사람에게는 등대가 된다. 가끔은 집주인 큰 아들놈이 살금살금 다가와 말도 걸고 가고, 막내 놈도 다가와서 날 쳐다보고 있다.
아주 밖에서 우리집 내부가 환하다. 밤거리 안전을 위한 가로등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7. 창문이 요로코롬 생겨먹어서 그럴까? 요즘엔 나의 밖을 보기 보다는,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은 파라과이가 선사하는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 선물이기도 하며, 나 스스로를 철저하게 분석해보고, 앞으로의 삶을 맘껏 상상해보는 둘도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8. '너는 누구야?', '너가 좋아하는 건 도대체 뭐야?', '너의 꿈은 뭐야?'
...... 뭐 이런 것들? 생각보다 간단할 수도, 생각보다 아주 어려울 수도 있는 것들.
9. 좋아, 분석해보자. 그러려고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글은 어떤 종류인지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분석의 내용은 나를 너무 까발리므로 공개하지 않지만, 분석의 결과는 아주 명백하다. 나는 ‘탁월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현상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본질’을 ‘통찰’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10. 하지만 삶에서 탁월함을 추구하기엔, 그리고 본질을 붙잡고 무소의 뿔처럼 들이박으며 살기엔 나란 사람은 겁과 두려움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도 역시 깨닫는다.
11. ‘누가 날 오해하고 나쁘게 생각하면 어쩌지?’, ‘진짜 고생스러울 텐데? 사서 고생할 필요 있어?’, ‘산다는게 뭐 별거 있겠어? 여우마누라, 토끼새끼면 될 일이지?’, ‘우리 엄마아빠는 누가 챙겨?’, ‘내 나이가 어디 적어? 어디 가도 꿇리지 않을 만큼 먹었잖아?’, ‘일단 이리저리 해본다지만 잘 안되면 진짜 끝장인건 알지?’ ......
12. 겁이 많은 건지, 영악한 건지. 생각보다 내가 너무 똑똑한 건지. 돌이켜보면 공부도, 관계도 나의 전부를 불태워서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쪽팔리다. 앞뒤로 재도 너무 쟀다.
13. 결국 문제는 선뜻 나 자신을 스스로 명확하게 규정짓기가 아쉬운 것일게다. 지금까지 내가 차마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있는건 아닐까 하며, 나 자신의 삶을 과감하고 결단력 있게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일게다.
14. 아, 다시 사춘긴가부다.
15. 사춘기여 con permiso.
루이비똥 앞에선 생각의 품질조차 달라진다. 파라과이 출국하는 날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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