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스승의 날(Día del maestro)

2013. 5. 2. 11:54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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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30일은 스승의 날(Día del maestro)이다. 스승의 날 당일에는 마땅히 스승과 제자의 참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파라과이의 자랑스러운 제자들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선생님들에게 휴식을 선물했다. 덕분에 30일 당일은 학교가 문을 닫았고, 하루 전인 29일 간단히 스승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번 아멜리야Amelia선생님과 떨었던 수다가 떠오른다. “다비드, 한국에도 스승의 날이 있어?” “응” “한국의 스승의 날은 어때?” “여기랑 비슷할 것 같은데? 아 맞다, 요즘 한국은 선생님이 선물 받는 걸 완전히 금지하고 있어! 하지만 난 받았지 몰래” “큭큭 나도 어떤 애가 어떤 선물이 필요하냐고 묻길래 그저 공부나 좀 하라고 말해줬어.”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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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시, 학교에 도착해서 멍하니 앉아 있는 나를 역시나 아멜리야Amelia가 부른다. 옆의 고등학교에서 좀 와보란다. 가봤더니 교실에 컴퓨터도 있고 프로젝터도 있다. “다비드, 뭔가 부족한 거 없어?” “어디 보자. 응, 부족한 것 없다. 프로젝터만 좀 더 가까이 두고 쓰면 되겠다.” “좋아. 그럼 이제 게임하자!”

  응? 게임이라고? 나는 그냥 평소와 같은 농담인 줄 알고, 히득히득 웃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진짜 이 선생님이 게임을 하기 원한다는 걸 파악했다. 약간 축제처럼 스승의 날을 보내다보니, 아이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 컴퓨터에 재밌는 게임이 있을 리가 있나. 나는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고등학생들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지뢰를 긴장감 있게 찾아야 했고, 카드를 박진감 있게 돌려야 했다.

  ‘음,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고등학교 교장 라모나Ramona가 들어왔다. 그랬더니 옆 교실로 이동하잔다. 우르르 함께 이동하니 어라, 빵도 있고 과자도 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축하하는 자리에, 졸지에 낀 신세가 되었다.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편했는데, 악녀로 소문난 라모나가 갑자기 살갑게 구니 더 불편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도 어쩌다보니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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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3시, 드디어 초등학교의 스승의 날 행사가 시작했다. 각 반 학생들이 준비한 순서를 보려고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였다. 스승의 은혜와 관련된 좋은 글을 낭독하는 학급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즐겁게 아빠미소 지으며 구경할 수 있는 댄스를 준비했다. 이놈들, 귀여워라. 얼굴에 화장까지 하고 옷도 차려 입었다.

스승의 날 행사 시작!

예쁘게 화장했다. 하지만 처음엔 얼굴이 멍이 난 줄로만 알고 혼자 웃었다.

파라과이 전통춤. 오른쪽 빗자루를 줍게 되는 사람은 짝궁 없이 빗자루하고 춤을 춰야 한다.

볼리비아 춤이라고 했는데, 차이점은 모르겠고 그냥 귀엽귀엽!

에어로빅 비슷한 섹시댄스.

얘는 그냥 지나가다가 찍힘.

 

  각 학급에서 준비한 순서를 마치고,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가장 큰 교실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는 8학년들이 준비한 간식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준비한 자리에 모두 앉자,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다. 나의 허접스러운 스페인어 실력 덕분에 해석은 되지 않았으나, 우리나라 스승의 은혜쯤 되었으리라.

  노래는 정말 징그럽게 못 부르는데, 몇몇 선생님의 손수건이 본인들의 눈앞에서 펄럭펄럭 댄다. 음식들이 있어서 파리가 꼈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눈물이 흘러나오는 걸 잘 참아보고자 애쓰는 노력이었다. ‘파라과이의 교사들이야말로 참 스승이네. 저런 음정의 노래에도 감동할 수 있다니 진짜 짱이네!’ 생각하며 나는 돈도 벌 겸 울고 있는 선생님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선생님들 다같이 모여서 건배!

스승의 은혜 노래부르기. 보아하니 8학년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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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큭큭큭, 난 네가 어디 가서 한 대 맞고 온 줄 알았어!” 모든 행사가 끝나고 파티마Fatima선생님에게 건넨 한마디였다. “울고 있는데 사진을 왜 찍는 거야! 그리고 오늘은 내 마지막 스승의 날이라고!” 사진을 찍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오늘이 그녀의 마지막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그래서 일부로 신경을 써주겠다고 해서 사진을 찍어 준건데, 결과물이 예능으로 나오니 이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파티마Fatima선생님, 울먹이는 모습을 찍었더니 영...

 

  나는 교사로서 두 번째 스승의 날을 맞이한 것이었다. 첫해에는 과학만 가르치는 전담교사였기 때문에 내 아이들, 내 새끼들이 없었다. 학교에 또래나이의 여자 선생님 한분이 계셨는데, 그게 불쌍했는지 그 반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들어오며 단체 무더기 편지를 전해준다. 그렇게 나의 첫 스승의 날은 엎드려 절 받기로 끝이 났고, 돌아오는 한국 스승의 날에 나는 파라과이 현지훈련 중이었다.

  마지막 스승의 날을 맞이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나처럼 처음 맞이했던 스승의 날을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교사로서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르륵 머릿속에 흘러갔을까? 아마도 그것은 기쁨이었겠지? 우리는 대개 좋았던 기억들만을 예쁘게 간직해서 꺼내보니깐. 교사로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그녀는 만족감을 느낄까 아니면 아쉬움이 남을까? 만약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어떻게 할까? 이제 두 돌을 맞이하는 초보교사는 다시금 이냥저냥 생각만 많아졌다.

이것들이 내가 받은 선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