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4. 11:48ㆍ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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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스터를 페이스북에서 만났다. 파라과이에서 재밌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조금 고독하다고 했고, 선생님 역할 제일 잘할 것 같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교실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 2학년 동물들을 사람처럼 가르친다는 것이 보통 어렵지 않겠지. 그리고 우리는 안부를 묻고, 신세한탄을 하며 건강히 지내자는 작별인사로 이야기를 맺었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녀로부터의 메시지가 다시 도착했다.
고독한 것은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다.
자려고 손에 붙든 책에서 릴케가 그랬단다. 책 좀 읽는구나, 기특한 시스터. 나도 본인의 교육적 의미를 찾고 있는 시스터에게 한 문장 선물해주고 싶었다.
영혼이 끊어질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하다보면, 모든 정신이 멍해지는 순간이 온다.
사람은 그때야 비로소 잘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녀가 누구보다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고로 그녀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길 바라면서 메시지를 보냈다. 함정은 문장의 창조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 릴케와 강창훈이라, 아무래도 비교의 등위가 맞질 않는다. 하지만 일단은 닭과 병아리 정도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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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K OUT. 지난 4일간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백지가 되어버리는 재밌는 경험을 했다. 고 3 시절부터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나의 삶의 방향성을 따져보며 살았으니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번 나흘만큼은 침대 위에 홀로 앉아 끙끙대며 고민을 했다. (잠도 잘 못 잤다. 피곤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등장하시더니, 서로 충돌하고 있는 여러 복잡한 생각들을 슥슥 지워버리시는 것 아닌가? 흰 도화지처럼 머릿속이 아련해지자,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나는 노트를 피고 정신을 집중한 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것은 나 자신을 완전히 설득했다. 나 스스로도 아주 당당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산을 오를 것인가?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학생들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학교를 경영하는 실천적 인간. 이 정도가 내가 오르겠다고 결정한 산이다. (산이 꽤나 가팔러 보여 걱정이다.) 고 3 때 내가 교육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대학시절 한동대학교 국제법률대학원 입학을 소망해본 것도, 내가 설정한 내 나이 50줄의 인생목표도 모두 이와 맥락을 함께한다. 내가 저자의 실제 삶을 담은 책들을 좋아하는 것도, 스포츠 감동 실화를 내용으로 하는 영화에 큰 재미를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려면 교육에 대한 나만의 확실한 가치관이 필요하다. 교육에 대해서 누가 이랬더라, 누가 저랬더라 하지 말고, 나만의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매년마다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로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립하고 확신하기 위해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교육에 대한 양서를 읽어 먹어 치울 생각이다.
또한 ‘대학의 교수들에게선 절대로 실제적이고 유의미한 도움이 나올 수 없다.’라는 나의 예전 생각에도 물음표를 남겨보았다. (나다니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물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나셨다.) ‘대학의 교수들이 혹시 나를 도와줄 수 있진 않을까? 내가 아직 모르는 곳이 있는 건 아닐까? 진정한 공부의 프로들과 함께한다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유익한 것들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교육학의 프로들과 함께 공부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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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산을 결정하고 최고의 발걸음으로 올라갔지만 정상에 서지 못한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도 없다. 산 중턱에 서서 좌절하다가 몸을 아래로 떨어뜨려 데굴데굴 구를 필요도 없다. 내가 아무리 교육에 관한 양서를 섭렵하고 교육의 프로들과 공부한다 한들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정상에 성공적으로 오를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내가 지금은 상상해 볼 수 없는 새로운 지경과 인식으로 나갈 수 있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이다. 모든 것을 지금의 내가 다 설정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며 능선에서 바라보는 산의 모습은 제각기 다른 것이다.
결국 하루하루 더 많이 살아갈수록 인생이 나에 의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남아프리카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믿음의승부facing the giants’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와 반가웠다. “The more I read this book, the more I realize life's not about us.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깨닫게 돼.)” 그렇다면 산 정상을 밟아도 좋고, 중턱에 그만 머무르게 되도 좋고, 길을 따라 다른 산으로 이동해도 아무렴 좋다. (노력을 게을리 하고, 책임을 회피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비비 꼬아서 읽는 독자가 없길!) 삶의 한순간 한순간은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나중 그 분 앞에 섰을 때에 내 삶이 멋진 한 폭의 그림이기를 바랄 뿐이다.
릴케 할머니, 나 이정도면 고유한 건가요? 아니면 더 고독해야 하나요?
하늘 위로 구름 비행기가 둥둥 떠다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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