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9. 12:47ㆍ책읽기와 책쓰기/북리뷰
한국에서 틈만 나면 큰 서점들을 자주 돌아다녔다. 책 한권을 손에 들고 주변의 눈치를 조금 본 후, 철퍼덕 주저 않아서 몇 시간이고 읽을 수 있는 아주 아주 큰 곳들. 어느 서점에서나 스테디셀러 코너에서는 ‘데일 카네기’의 책들을 볼 수 있었다. 웬만하면 한권쯤 뽑아서 읽어봤을 텐데, 단 한권도 건드려보지 않았다. 일단 책의 두께가 충분한 부담감을 주었고, 표지 속의 인물의 모습이 꽤나 지루하게 보였다.
책을 몇 일에 걸쳐 조금 조금씩 읽어냈다. 그리고 데일카네기의 저서들이 왜 스테디셀러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단순한 처세 기술을 가르치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었다. 고로 책의 내용은 당연하지만, 언제나 핵심을 찌르고 본질적이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스타일이다.
그럼 나도 데일 카네기처럼 이 책의 핵심을 통찰해볼까? 그가 생각하는 인간관계론의 핵심은 바로 타인으로 하여금 그(녀)가 스스로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었다. 내 분석이 맞다면 이건 분명히 데일 카네기가 생각했던 인간의 본성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따라서 좋은 인간관계를 원한다면 타인의 중요성을 항상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단순히 남의 더러운 그 곳을 닦아주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항상 생각하고, 이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행동하면 된다. 오히려 편하다. 성격이 외향적이고 긍정적일 필요도 없고, 상대방의 혈액형을 사전에 파악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데일 카네기가 제시하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1. 논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
2.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라. 결코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말라.
3. 잘못을 저질렀다면 즉시 분명한 태도로 그것을 인정하라.
4. 우호적인 태도로 말을 시작하라.
5. 상대방이 당신의 말에 즉각 “네, 네”라고 대답하게 하라.
6. 상대방으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라.
7.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아이디어가 바로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라.
8. 상대방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성실히 노력하라.
9. 상대방의 생각이나 욕구에 공감하라.
10. 보다 고매한 동기에 호소하라.
11. 당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표현하라.
12. 도전 의욕을 불러 일으켜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대화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나는 ‘용건’이 있는 만남을 할 때, 용건부터 불쑥 내미는 스타일이다. 뭔가 더 깔끔하고 정직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중요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라면 앞으로는 그렇게 행동하면 절대 안 될 것이다. 내가 용건이 있고 특별히 그것을 타인에게 부탁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타인은 충분히 자신의 중요성을 ‘먼저’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충분히 중요한 존재임을 토해내도록, 그리고 몰랐다면 알 수 있도록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고, 가정상점 주인 Victor Lezcano씨를 만났다.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 협조를 위해 이전에 만났었는데, 이상한 소리를 해 대었다. 이야기가 잘 됐었고, 계약서에 싸인만 하면 되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아 죽을 때가 됐다(나이랑 무슨 상관?)”, “너의 스페인어가 이상해서 하나도 이해가 안 된다(저번에는 이해 잘 된다면서?)”, “이 동네 놈들은 다 강도들이다(착한 사람들도 많잖아요?)” 등등.
그땐 솔직히 ‘이 사람 정상 아니네. 살짝 미쳤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내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이상한 맛이 나는 쥬스를 쪽쪽 얻어 마시면서, 그 사람 이야기만 들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이곳에 처음 정착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이었고, 이 곳 사람들에게 섭섭한 것은 무엇이지 등등.....
빅또르 아저씨는 나의 claro!(당연하지), exactamente(정확해요), en serio?(어머, 진짜) 등의 추임새 시리즈에 맞춰서 약 1시간을 폭풍수다 하시더니만, 스스로 내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리고 ‘함께 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들과 같이 일하기는 조금 마음이 어렵다.’ 라고 말해주었다. 그게 마음에 안들었구나... 특별히 더 이상 설득하지는 않았다. 그저 알겠다고 했다. 일은 나중에 같이 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빅또르 아저씨와는 좋은 관계를 가져, 나는 심심할 때 언제든지 놀러갈 수 있는 친구 하나 더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를 나름대로 찾을 수 있었다. 항상 ‘역지사지’하라고 배웠다. 나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선생노릇하며 아이들이 싸우면 결국 마지막엔 ‘너가 철수입장이 되어 생각해봐.’, ‘항상 행동하기 이전에 상대방 입장을 한 번 더 고려하란 말이야!’라고 가르쳤고 꾸짖었다. 하지만 그게 잘 되던가? 나 자신도 못하는 건데 애들한테 요구하다니. 그게 그렇게 잘 되는 것이라면 혼날 행동을 했겠는가 말이다.
진짜 ‘역지사지’는 ‘내가 그(녀)라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녀)라도 그렇게 꼭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라고 무조건적으로 가정하는 것이었다. 즉, 피해 받은 사람이 피해를 준 사람 입장에 서 보는 것. 그냥 상상해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똑같은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역지사지‘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실제상황에서 이렇게만 생각할 수 있다면, 나의 인간관계가 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연습해야겠다. 내가 발견한 ’역지사지‘의 의미가 머리 속에서 습관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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