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17. 14:36ㆍ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1.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실험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주고 곧장 맛있는 아사도(asado)를 계속해서 준다면, 나중엔 단순히 종소리만 들려주는 ‘조건’에도 ‘반사적’으로 침을 흘린다는 것이다.
아사도 옆에서 얌전히 침만 흘리는 배워먹은 짐승, 프레시오사
2. 오전 9시, 아멜리야Amelia 교감선생님이 쉬는 시간을 알리는 벨 부저를 울린다. 동시에 교실 곳곳에서 퍼지는 ‘와~~~’하는 함성. 하지만 아이들이 파블로프의 ‘개’가 아님은 틀림없다. 20분간의 쉬는 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 부저가 다시 한 번 울릴 때는, 좀처럼 교실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질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함성 소리도 없다.
3. 이번 학기에는 학교에서 음악수업을 하고 있다. 특별히 코이카KOICA에서 멜로디언을 지원받아 기초음악이론과 멜로디언실기수업을 감사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업을 진행하는 나의 모습은 슬픔과 절망의 ‘와......’ 이었고, 수업을 마쳤을 때는 기쁨의 ‘와~~~’ 함성이었다.
4. 물론 기초음악이론이 생소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충분히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잘 쳐다보지도 않고, 설명도 들어주질 않으면서 피식피식 웃기만 하니 정말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 특히나 4학년 마리Mari 선생님은 자신의 학생들이 굉장히 훌륭하다면서 날 수업에 꼬셔냈는데, 소위 한국의 부진아 20명과 함께 수업하는 느낌이었다.
5. 무려 2~3주 동안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를 오선악보에 그리는 법을 설명했다. 그런데 한 옥타브 높은 ‘파, 파, 솔, 솔, 시, 시, 시, 시’ 그려놓으면 어쩌자는 것일까? 도레미파솔라시도 점점 올라가야지, 왜 점점 내려오는 것일까? 몇 개의 음표는 왜 도대체 왜 저기 안드로메다에 있는 것일까?
6. 나는 멜로디언 수업을 모든 4, 5, 6학년 학생들과 공유하고자 계획했다. 그리고 일단 4학년 마리Mari 선생님과 6학년 리나Lina 선생님의 학생들을 마루타로 삼아 수업을 진행해본 것이었다. 마리Mari 선생님은 적어도 항상 나에게 협조적이었고, 6학년 아이들은 큰 머리통 덕분에 수업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7. 걱정이 태산이었다. 남은 학급은 수니Zuni 선생님의 4학년과, 구스타보Gustavo 선생님의 5학년 학급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제법 학교적응은 완료했고, 학교와 선생님들이 눈에 보였다. 수니Zuni 선생님의 학급은 항상 정돈되지 않았고, 교사로서의 평판도 그리 좋지 않았다. 구스타보Gustavo 선생님은 항상 나에게 비협조적이었다.
8. 고민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계속 한탄만 하게 될 거라면, 적당히 해서 나의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좋을 텐데. 하지만 ‘너무 노는 것 아닌가?’ 하는 양심의 가책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매달 제출하는 보고서의 진실성(?)을 높이기 위해서 일단 수업에 들어가겠다고 통보했다.
9. 그리고 나는 정말 좋은 학생들을 만났다! 수니Zuni 선생님의 4학년 학생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르친 내용을 잘 이해하고 따라했다. (무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잘 그려냈다.) 구스타보Gustavo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과라니어로 아이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것만 읽고 쓸 줄 알면, 멜로디언 치자. 제발!
10.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음악수업의 내용이 워낙 아이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설명을 한 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하나하나 연필을 함께 잡고 일일이 가르쳐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르칠 때의 나의 자세가 항상 백허그 비슷하게 된다는 점이다.
11. 얘들아, 음악시간에는 꼭 머리를 감고 오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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