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도움이 필요하다.

2013. 11. 8. 12:53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1.

  방학이 시작됐다. 파라과이에서 맞는 마지막 방학. 뒷심을 발휘해서 방학에도 피아노 수업을 개설하기로 했다.

  그런데 로시오Rocio가 일주일 내내 정해진 시간이 오지 않는다. 학생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피아노 양손 연습을 시작한 똑똑하고 성실한 나의 로시오. 그 아이를 방학 동안 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로시오의 집을 찾아 나섰다. 집근처 길가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왜 수업에 안와? 이번 방학에 농장에 가지 않는다고 했잖아.”

  (대부분의 마을 아이들, 방학이 되면 부모님을 따라 여러 가축을 기르는 농장으로 이동한다.)


  답답하게 고개만 흔든다. 

  그리고 모른 척 제 갈 길을 간다.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수업에 나올 맘이 없어졌다는 건지, 방학에는 쉬겠다는 건지.


  “수업에 안 오겠다는 거야? 농장에 가기로 했니?”


  “내일.”


  “그래, 그럼 방학이 끝나면 오는거니?”


  “응.” 


  그리고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2.

  과달루페Guadalrupe라는 아이가 있다. 정말 소심하다.

  

  내가 물었다.   


  “방학 동안에 마을에 있니, 아니면 농장에 가니?”


  나를 쳐다보면서 그냥 아무 말이 없다. 약간 억울한 표정을 지을뿐.


  “답답해 죽겠네, 농장에 가냐구? 아니면 이곳에 남아있어?”


  결국 대답하지 않았다. 뒤따라 들어오던 선생님에게 물어봐서 대답을 겨우 얻어 들었다. 엎드려 절 받기.


  이 곳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다. 활발하고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애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조용하다. 교실에 들어오면 밝게 인사하지 않고선, 소리 소문 없이 자리에 앉는다. 어느새 고개를 돌리면 내 앞에 앉아 있다. 아무런 소식 없이 장기간 결석하다가도, 어느 날 그냥 수업에 온다.


  “왜 그 동안 안 왔어? 꾸준히 오지 않으면 가르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반 협박으로 말해도 소용없다. 아이들은 그저 웃는다. 

  씨익.


  깝치는 파라과죠들이 그립다.



3.

  피아노를 도서관에서 가르친다. 싫다. 학교도서관, 그리고 독서교육과정은 내가 기획했다. 피아노가 소음이 되어 방해하지 않길 바랐다.

  도서관 말고도 내가 노리고 있던 남은 교실이 하나 있었다. 음악실 정도로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출입문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도서관으로 대피한 것이다. 잠시일 뿐이리라. 문 정도야 고쳐주겠지.


  교장이 말했다.

  “문이 오래 되서 고치기가 쉽지 않어. 네가 문을 바꿔보는 게 어때?”


  내가 돈으로 보이나. 장학관에게 쫓아가서 일러바쳐도 소용이 없다.

  어쩔 수 없나 보다 했는데, 방학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와서 문을 뚝딱뚝딱 고치고 있다.


  내, 이것들을 확.

나를 제일 많이 도와주는 아멜리아. 당신이 교장이었다면 나는 학교를 위해 정말 아낌없이 일해주었을 것이다.


4.

  제본한 피아노교재를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교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일단 내 돈을 들였으니,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책값은 부담해주어야 한다. 조금 비싼 삼만 과라니.

  몇몇이 순순히 책값을 가져다줬다. 고맙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현재 열 명 정도는 책값을 모른척하고 있다. 언제나 있는 것들이 더하다. 동네에서 제법 잘 살고, 여유 있는 집 자식들이 관대한 마음으로 책값을 건너뛰려고 하고 있다. 특히 교장, 학교 대표가 딸내미 책값을 아끼고 있다니.


  나도 아등바등 살아가는 처지라 이걸 꼭 받아내겠다고 결심했다.


  큰 맘 먹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직 책값 안냈지? 부모님한테 책값 내야 한다고 말씀드리렴.”


  내가 좋아하는 에리카Erica가 말했다.

  “우리 엄마는 돈이 없어요.(Mi mama no tiene plata.)”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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