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마누엘Manuel

2013. 11. 11. 05:27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말은 자고로 주고받는 것이다.

a: Hola, que tal? (안녕, 어떻게 지내니?)

b: Muy bien, y vos? (잘 지내. 넌 어때?)


  한 사람이 질문을 한다. 그럼 다른 한 사람이 대답하고, 되묻는다. 대화는 마땅히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녀)의 안부가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더라도, “Que tal?”하고 먼저 치고 나갔다면, 시큰둥한 “Muy bien." 소리를 반사적으로 들어야만 한다. (물론 상대방이 "Que tal?" 했을 때, 나 역시 "Que tal?"로 맞받아치는 경우도 적진 않지만.)


  내 친구 마누엘Manuel이 있다. 그는 파티마Fatima 선생님의 외아들인데 부정확한 혀 짧은 발음으로 스페인어를 마구 내뱉는다. 그런데 정말 ‘많이’ 말한다. 그래서 파티마 선생님은 의사선생님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고 했다.

  “아니, 도대체 내 아들은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겁니까?” "Por que mi hijo habla habla demasiado?"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웃겼다.


  의사선생님은 그랬단다. "아이 마음속에 기쁨이 가득한 거라고 생각합시다."

  나의 다섯 살 박이 친구 마누엘. 그는 나를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를 만나면 가슴 속의 기쁨이 용솟음 치기 때문이다. 곧 나에게 오른손을 내밀며 안부를 묻는다.

  

  바로 이렇게.

Manuel: Que tal muy bien?

David: …… ㅋㅋㅋㅋㅋㅋㅋ


  요즘은 좀 컸다고 안부 인사 “Que tal?”을 하고 조금 기다려주는 여유가 생기긴 했다. 귀여운 녀석. 사촌형과 길을 가다가도 멀리 내가 있는걸 보면 “David!! David!!”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어주기까지 목 놓아 부른다. 그런 나의 모습을 확인하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쿨하게 자기 갈 길만 갈 거면서 말이다.

마누엘이 저 모자를 쓰고 있을 때는 Boliviano(볼리비아 사람)이라고 부른다.


  가끔 마누엘과 축구를 찰 때도 많다. 아직 유치원도 다니지 않는 아이가 공을 제법 찬다. 꼬맹이를 상대로 공을 뻥 뻥 찰 수도 없으니 발의 안쪽 면을 사용하여 부드럽게 공을 넘겨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인사이드킥을 하려면, 공이 굴러올 때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시선을 잠시 동안 아래로 떨어뜨려야 한다. 시선은 공을 인사이드로 밀어 올리면서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공이 굴러오는 것을 확인하고, 시선을 잠시 떨어뜨렸다가 올리는 것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마누엘. 내가 공을 차려고 준비하는 그 찰나의 시간을 선용하여 바지를 내려 오줌을 싸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눈을 아래로 깔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가 입은 반바지 고무줄의 미친 탄력을 이용하여 단번에 바지를 내리는데 성공한 후, 거의 동시에 오줌을 발사해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황당하고 재밌었다. 내가 공을 차기 전, 그는 분명히 신나고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공을 차고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땐, 그는 남자들이 취하는 그 안정적인 정자세로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있었다.



녀석,

너의 자신감이,

너의 자유로움이 부럽다.


마누엘 5살 생일잔치. 큰 식칼로 케잌 자르는 상남자.


마누엘 학교 놀러온 날.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다 해봐야 한다. 피아노도 치고, 책도 읽고, 공도 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