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식을 우두커니 지켜보면서

2013. 11. 15. 12:08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고등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작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한 신생학교다. 오늘 바로 두 번째 졸업식이 열린 것이었다.  

  몹시 피곤했다. 지난 밤 다섯 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아침부터 네 시간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밥에 3분 카레를 비벼먹은 것뿐이었다.

  매우 덥기도 했다. 졸업식은 여섯시쯤 시작했다. 한국이라면 슬슬 해님 퇴근하시고 달님 출근하실 때겠지만, 파라과이 해님은 어쩐지 굵고 오래간다. 여름 햇빛 밑에서 가만히 서 있자니 안 그래도 튀어나온 입이 이만큼 더 튀어나왔다. 에르멜린다Hermelinda 선생님을 붙잡고 분석적인 비판을 시작했다. ‘오후엔 해가 저쪽에 있는데 이런 식으로 지붕을 짧게 내서 쓰겠나. 교실 안은 신경 써서 잘 지었더만, 이거 완전 엉망이네.’ 파라과이 와서 아저씨다운 공학적 면모가 생겼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의자를 들고 나무그늘을 찾아 앉았다. 사진 찍으라고 초대 받았지만, 사람 좋은 구경꾼 역할을 맡았다. 좋았다. 그늘 밑에서 다리 하나 꼬고 보고 있자니 졸업식 전체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학교건물은 새것이라 참 좋았고, 졸업생들은 교복을 예쁘게 차려입었다. (넥타이는 내가 매주었다.)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였다. 마이크 스피커에선 계속해서 귀에 거슬리는 하울링이 났다. 가족들과 친척들이 자리를 매웠고, 교육관계자들이 한사람씩 나와 학생들에게 축사를 전했다. 학교 밖에서는 어린 아이들 둘 셋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을 배경으로.

아, 사진을 잘 찍고 싶다. 공부해야 하는데 ㅠㅠ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왜 지구 정반대편 이곳에 앉아있는지, 내가 왜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이 사람들과 살을 비벼가며 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통째로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혹시 오늘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선 아닐까. 이 장면을 내 인생무대에 올리기 위한 리허설로 삼기 위해선 아닐까.

  

  이년 전 일이다. 학교 선배가 코이카 협력요원 공고가 떴다고 알려주었다. 그간 보기 드문 초등교육분야 협력요원을 3명이나 모집했다. 이럴 수가! 나는 잠시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판승부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서류심사를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문제였다. 나는 선발과정에 이점이 될 만한 특이경력이 없었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을 누구보다 묵직하게 쓰고 싶었다.

  자기소개서의 첫 질문은 이랬다.

  ‘해외봉사단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허, 참. 하얀 워드프로세서 배경에 깜빡이는 커서는 언제나 말 막히고 글 막히게 만든다지만, 도대체 쓸 말이 부족했다. 진정성을 추구하여, ‘제가 정말 군대 가기 싫거든요. 군대대체복무가 제 꿈입니다.’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는 내 꿈을 정말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백지 위에 나 자신을 숙명적으로 쏟아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우리는 언제나 상상 이상을 생각하게 된다.

  가만 보자. 나는 아직 젊다. (그때는 얼굴도 동안이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그러면 해외봉사단 활동이 내가 생각하는 장기적인 인생의 방향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쓰면 좋을 것 같다. 그럼 내 인생의 방향성? 으, 잘 모르겠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더 편할 것 같았다. 아주 나중에라도 내가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하길 희망하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았다.


  나는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있었다. 연단 앞에 서 있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연단은 오래 사용했는지 낡고 벌레 먹은 모양이었다. 나는 대머리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마를 지금보다도 훨씬 더 넓게 그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귀를 찢는 마이크 하울링 소리 때문에 말이 여러 번 중단되었다. 이미지 속의 내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이는 한 쉰? 그랬으면 좋겠다.


  이렇게 문장으로 그림을 그렸다. 해외봉사단 활동이 이 그림을 그려 나가는데 큰 도움을 줄 것 같다고 했다. 좋은 조언자들, 회림이와 학선이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자기소개서라기보다 낭만적인 소설 같다, 라고 했던 기억이다. 그들의 뜻을 존중하여 나는 지원동기를 좀 손보게 되었다. 너무 나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모든 평가자가 읽고 쉽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재미는 덜했다. (하지만 나는 내 꿈을 정말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파라과이에 온지 벌써 일 년 육 개월쯤 되었다. 파라과이에서 지내온 날들이 앞으로 지낼 날들보다 훨씬 많다. 시간은 날아가고, 현재에 적응해 아등바등 살아가느라 내가 상상했던 그림들을 몽땅 잃어버린 줄만 알았다. 나이 오십 줄이 되었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만족하겠다 생각했던 것을 정작 이곳에선 재차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고등학교 졸업식을 우두커니 지켜보면서, 잃어버렸던 나의 그 ‘심상’이 다시 내 가슴 속에 찾아온 것이었다.

  따져보면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일은 참 꿈같은 일이다. 한국에서 추억해보아도 다시 되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 돌아온다 하더라도, 이 곳 그리고 이 사람들을 똑같이 마주할 수 있을까? 좀 더 만족하고, 좀 더 감사하고, 좀 더 인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