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2013. 12. 22. 12:08KOICA 해외봉사활동/상상하고, 추억하며 2013



  선택의 기로에서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종종 던진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잘하는 일을 할까?’ 누군가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좋아하는 일은 계속하게 되고, 계속하면 누구나 그 일을 잘하게 될 것이므로.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 잘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자신의 업(業)은 본인이 잘하는 일이어야 하며,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써 삶을 더 풍족하게 할 수 있으므로. 뭐, 잘하는 일을 계속하다보면 일의 성취에서 느껴지는 뿌듯함으로 그 일을 사랑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굉장한 현자의 대답이라고 해서 모든 이의 가려운 등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는 없는 법이다. 모든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직접 던져볼 줄 알아야 하고, 맘 속 깊이 숙성시켜서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1. 내가 좋아하는 일은? ………… (대답하기 어렵다.)

  2. 내가 잘하는 일은? ………… (역시 변변치 않다.)


  나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가 잘하는 일을 비교해보려면, 그 대상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일이 수박을 먹는 것이고, 잘하는 일이 청소라면 단 일초의 고민도 없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만약 내가 잘하는 일이 일확천금을 얻는 기술이라고 한다면 나의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천금으로는 더 많은 수박을 살 수 있을 것이므로.)

  굳이 나에 대해 말해보자면, 굳이 남들보다 무엇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은 없지만 해야 하는 일은 정해진 편이다. 굳이 직업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잠깐의 실수로 초등학교에 발이 묶여버리는 신세가 되었고 이 굴레는 벗어내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 들어 한국 돌아갈 생각은 삶이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그 무게를 못 이겨 살은 점점 빠져간다.) 그렇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나는 이 젊은 28살에 ‘가르치는 사람’으로 낙인찍혔고, 지금 여기 파라과이에서도 아이들을 꾸역꾸역 가르치고 있다.


  이번 주 수요일, 피아노 수업에 온 에리카Erica의 표정이 계속 좋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가르칠 거 가르치고 연습시킬 거 연습시킨 후, 아이를 집에 보냈다. 그래도 맘에 좀 걸려서 과자 하나 들고 집에 가는 아이 손에 쥐어줬는데, 그래도 아이 표정은 별로였다. 그리고 에리카는 목요일, 금요일을 연달아 수업에 결석했다. 목요일을 그러려니 했는데, 금요일까지 빠지니 에리카 집 근처에 사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에리카Erica 왜 안와?”

  내가 물어봤다.

  “필라델피아Filadelfia로 여행갔어.”

  로이다Loida가 대답해주었다.


  “에리카Erica 왜 안와?”

  다음시간, 역시 내가 물어보았다.

  “이제 오기 싫대. 그런데 여행 갔다고 말해달라고 했어.”

  조아나Johana가 대답했다.

  “거짓말이네?”

  내가 물어봤다.

  “응.”

  당찬 대답.


  아니, 나의 에리카가, 성실하고 말 잘 듣던 나의 에리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그것도 내가 헌신해서 진행하고 있는 수업을 불참하기 위해서. 수업 내내 멍했다. 저 아이도, 그리고 또 다른 저 아이도 사실은 지금 나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을 지겨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에리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그렇다,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 즉 ‘가르치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계속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실패한다. 나도 싫증나고 못 참겠고, 아이들도 결국 내뒹굴고 만다. 잘 가르치는 사람들은 똑같은 내용도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전달해 주더만, 나는 공부에 관한한 철저한 새디스트다. 고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아이들이 핵심적인 내용을 스스로 인내하고 번민하며 구도자의 자세로 계속 연습해나가도록 거칠게 몰아붙인다. 그게 최고니깐……. 하지만 실패는 반복되고, 나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이제는 그만 가르치고 싶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화자는 고향친구인 조를 보며 생각한다. 조는 무진의 세무서장으로서 자신의 바쁜 일과를 보여주며 떵떵거리며 자랑하고 싶었는데, 주인공 윤희중에게는 그 바쁨조차 서툴러보였기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서투르다는 것은, 그것이 무슨 일이든지 설령 도둑질이라고 할지라도 서투르다는 것은 보기에 딱하고 보는 사람을 신경질 나게 한다.’


  인터넷 검색해보면 가끔 욕은 먹지만, 내 눈에는 그야말로 통찰력 있는 글을 맵시 있게 뽑아내는 강인선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멋있는 직업’은 없다. 그 일을 ‘멋있게 만드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멋있어 보이는 일도 꼬질꼬질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시시해 보이는 일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아무도 관심 없던 직업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일을 멋지게 해내는 사람이 등장하면 갑자기 ‘인기 직종’이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던가.'


  

  아, 나는 누군가 보기에 딱하고, 그를 신경질 나게 하는 사람은 아닐까. 누구는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가치 있는 일을 내가 꼬질꼬질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해야 하는 일’이 ‘잘 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일을 잘하다 보니 그 일을 사랑할 수 있게. 아니면 ‘해야 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일을 즐겁게 계속하다 보니, 잘 할 수 있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