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돌아가야겠다.

2014. 4. 22. 14:39KOICA 해외봉사활동/파라과이, 대한민국 2014

  블로그를 끊었다.

  여기저기서 글 좀 쓴다는 칭찬에 방방 뛰어다니며 블로그 활동을 했었는데,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나는 잘 못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패기가 부족하다 하겠지만, 덕분에 나는 게임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게임 베틀만 했다 하면 친구들에게 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기지 못하면 영 재미가 없다.

  읽어내는 책의 수가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먹은 게 있어야 싼다. 읽는 양이 터무니없이 줄어들자 나의 생각을 남기는 일도 자신이 없어졌다. 블로그를 본 사람들의 댓글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내 모습도 눈꼴사나웠다. 그래도 몇몇 방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2014 게시판을 개설했다. 욕심 없이 쓰겠다. 특별한 목표 없이.



  일주일 세마나산타 연휴동안 코이카 동료단원들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문희누나, 혜원누나, 선미누나에게 감사드린다. 사람들이 모여 나누는 대화는 가장 재밌는 오락이다. 특히 볼거리 놀 거리 없는 파라과이에서 재미를 찾자면 상대방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편이 가장 빠르다. 뒷담화가 아닌 본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줄만 알면 충분히 건강하게 재미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마나산타 연휴는 제법 건설적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치열한 내적인 고민을 안고 산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야 과도하게 내적으로 파고드는 성격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의 내면에도 치열한 공방이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고로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대화를 통해 큰 배움이 있다.


  블로그의 건강을 위해서 소소한 내 이야기를 좀 풀어놓자면, 나도 분명히 많은 고민들을 안고 있다. 남들과 비슷한 평균적인 양의 고민일 것이다. (이전에는 내 고민이 남들의 그것보다 훨씬 많아보였다.)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들과 함께 파라과이에 왔고, 2년간 마음속에서 숙성시켜가며 결정을 내리고자 했다.

  참고: http://changhun.tistory.com/88 

  이전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관하여 글을 쓴 적이 있다. 현재까지의 결론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좋아하는 일, 그리고 잘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설사 그것들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들과의 만남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처럼, 아니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덜 좋아하고, 잘 못하더라도 내가 사명감을 느끼는 일은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해낼 수 있다. 나는 약자가 잘되길 바란다. 나는 소외된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가치롭다고 여긴다. 교육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해야만 할까? 교육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향해 어떻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다. 잘 온 것 같다. 물론 나의 가치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복음과 어떻게 부드럽게 연결될 수 있을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치롭다 생각하는 일을 기준으로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가니, 나중 성공해서 대단한 사람 되어야겠다, 남들에게 뽐낼 수 있는 멋진 공부를 꼭 하리라 같은 말 못할 마음의 짐들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 나아가 지금까지 사소하게 생각했던 교직의 일도 나에게 과분하도록 가치로운 일이라는 판단이다. 일단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현재 운영하는 음악동아리 오후반 학생들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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