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옆자리

2014. 5. 24. 15:16KOICA 해외봉사활동/파라과이, 대한민국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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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아순시온에 내려가자면 참 오랫동안 버스를 타야한다. 파라과이 버스에 대해서 단원들 참 하고 싶은 말 많을 것이다. 버스에 에어컨이 없어서, 청결하지 못해서, 버스 차편이 자주 없어서…….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파라과이 버스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가장 치명적인 변수는 바로 ‘내 옆 사람’이다. 내 옆자리가 절대 뚱뚱한 세뇨라여서는 안 된다. 자리 밑에 짐을 놓은 후 내 자리까지 양발을 삐져나오게 하는 무다리도 사절이다.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땀 냄새도 비매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아순시온에 내려가면서 탔던 버스는 정말 최악이었다. 내 옆에는 등치 큰 파라과이 아저씨 한 분이 앉아있었는데, 얼굴 찌푸리게 만드는 남자향내를 줄곧 냈다. 나도 남자라 당연 구린내를 풍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아저씨 들숨 한번 날숨 한번 내쉴 때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쉰내가 몰려왔다. 버스 타고 내려오는 9시간 내내 얼마나 힘들었는지, 새벽을 지나 달리는 버스 안에서 제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본인 악취는 맡을 수 없게 설계되어있나 보다. 자신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그리 숙면하실 수는 없었을 텐데‧……. 조심히 살아야겠다.

현지적응훈련 때 파라과이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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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잘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 빨리 말하려다 보면 말을 더듬거릴 때도 많다. 웃긴 것은 스페인어도 더듬는다는 것이다. 한식당에서 웨이터에게 밥을 뜻하는 단어 아로스arroz를 몇 번이나 더듬어 겨우 한 공기 더 받아먹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전에는 말을 의도적으로 아끼려고 했다. 친한 이들과 사석에서는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사교모임이 어려웠다. 적극적으로 말하기를 포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하기는 화자의 자아효능감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존감. 내가 말하면 상대방이 들을 것이라는 믿음. 그게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말을 또박또박 조리 있게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 자체를 인정한다면 틀림없이 귀담아 들을 것인데. 내 말을 듣는 상대방이 내 말하기를 어떻게 평가할지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앞으로 공식적인 모임에서도, 연장자나 부담스러운 사람들 앞에서도 용기를 내어 입을 뻥끗하는 훈련을 해야겠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말할 때 대부분 사람들은 들어보려고 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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