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2014. 4. 30. 11:00KOICA 해외봉사활동/파라과이, 대한민국 2014


 작년 9월 12일, 음악동아리를 모집했다. 정규수업을 내려놓고 방과후학교 또는 음악학원을 운영하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가르쳐나가기가 힘들었으므로. 바꿔 말하면 스페인어 실력이 딸려서.. 부연하자면 나의 전달력이 떨어져서...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개별화학습을 진행하고 싶어서.... 

음악동아리 모집. 벌써 8개월 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처음 설정한 수업의 컨셉을 유지하며 8개월을 달려왔다. 물론 중간에 국외휴가를 다녀오느라 약 한 달간 자리를 비우기도 했지만, 3개월이나 되는 긴 여름방학 동안에도 쉬지 않고 수업했으니 봉사자로서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얻었다. 처음에는 25명쯤 모였던 것 같다. 피아노 배우는 아이들이. 나름 아이들로 바글바글 했고, 조금의 쉬는 시간도 없어서 매우 힘들었었는데. 지금 정원은 12명뿐이고 이번 주 연주회에 참여하는 정예멤버는 딱 10명이다.

  참고링크: 나도 내 새끼들이 필요했다.


  나는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봤다고 생각하는, 아니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도 선생이라고, 아이들을 직접 가르쳐서 얻는 결과물을 보고 싶었다. 피아노를 가르쳐서 ‘내가 집에 가기 전에’ 성공적으로 연주회를 치르는 것이 내 수업의 목표라면 목표였고, 그래서 급하게 그리고 열심히 달려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연주회가 이제 딱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피아노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기악합주가 목표였다. 피아노의 기초를 빠르게 이해시키고, 그 힘으로 다른 기악악기들로 빠르게 전환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어쩌지,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연주회의 컨셉도 ‘가족발표회Concierto Familiar’이다. 아이들의 가족과 학교의 선생님만 초대했다. 아무리 못해도 내 새끼가 하는 것은 잘해 보인다는 엄마아빠의 심리를 이용한 치사한 발표회다. 그래도 ‘콘서트’를 뜻하는 ‘Concierto’라는 단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


  부모의 마음을 단순히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대놓고 공략하기로 했다. 연주실력이 딸리니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5월은 가족의 달이다. 가족발표회를 열고 가족을 초대한다. 그리고 한사람씩 나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엄마에게 감사편지를 읽어준다. 그리고 준비한 꽃다발을 엄마에게 안겨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엄마가 감동으로 이성의 힘을 잃고, 주변 사람들이 술렁일 때 아이는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듯이 단숨에 연주를 종료하는 것이다. 연주 발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고... 다시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서 감동을 준다. 이렇게 10번만 반복하면 연주회가 끝이 난다. 

꽃다발 준비를 도와준 정은과 까렌


  그래도 이번 연주회를 전전긍긍 준비하며 참 선생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음악동아리를 처음 시작할 때는 피아노 생각보다 재미없다며 클래스에 오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나 역시 등 떠밀어 내보냈었다. 하지만 요즘 연주회에 참여하기로 한 아이들을 공들여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장기간 결석하거나 더 이상 오기 싫다는 말을 들으면 어김없이 가정방문을 감행한다. 부모와 이야기하면 효과가 아주 그만이다.


  쉽지 않다. 피아노를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이가 잘 배울까? 아니다, 똑똑한 아니 똘똘한 아이들이 잘 이해한다. 그런데 내게는 똘똘한 아이들이 없어서 힘들다. 아직도 ‘도’에 엄지손가락을 자신 있게 올려놓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받은 상처가 깊다. 학교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렵다. 올해부터는 예전에 창고로 쓰던 방이 남아 그곳에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문이 노쇠하셔서 잘 잠기지 않았다. 매일 끙끙되는 나를 보며 ‘네가 돈을 내면 문을 고쳐주겠노라.’ 말하던 선생님에겐 아직도 황당함 가득이다. 내가 망가뜨린 것도 아니고.


  아무렴 어떤가. 아이들도 내가 직접 발로 뛰며 찾아다니고, 초대장도 내가, 순서지도 내가 만든다. 오히려 쓸데없는 협의과정이 없어서 좋은 면도 있다. 발표회의 사회도 내가 보려고 했지만, 스스로를 만류하여 교장선생님께 mc자리를 건넸다. 흔쾌히 받아주어 고맙다. 천으로 교실을 꾸미는 것은 우리 술마선생님이 도와주기로 했다. 얼마나 예쁠지는 모르지만 나야 전혀 할 줄을 모르니 좋은 마음으로 부탁했다. 꽃다발을 포장하는 것은 정은이와 까렌이 도와주었다. 감사! 발표회의 규모가 커지면 나 스스로도 부담될 것 같아 가족들과 선생님들만 초대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라디오에서 광고를 해줬다. 코이카 봉사자 다비드라는 일본인이 아이들과 연주회를 연다고... 기껏 고생했더니 일본을 먹여 살리는 일이 되었다. 역시 문화의 힘이란!


가족발표회 초대장. 10명의 아이들이 가족들을 대상으로 5장씩 뿌렸다. ㅎㅎ


급조한 순서지. 모두 10명이 참석하는 가족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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