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분노했다.

2012. 11. 5. 11:00KOICA 해외봉사활동/사랑하고, 살아가며 2012

1. 나는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는 않는다. 언젠가부터인가 내 삶의 태도에서 경쟁적이고 투쟁적인 정신을 솎아내기로 결심했던 적이 있었던것 같다. 그리고 타인과 주변상황에 무관심한 좋지 않은 성격 탓일수도 있다. 갈등회피적인 나의 태도 때문에, 나는 타인과 미묘한 갈등이 있더라도 당사자와 직접 만나서 담판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냥 참아내거나, 내 측면에서 문제를 새롭게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2. 하지만 오늘은 조금은 화가 났다. 단순하게 화만 났다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고. 짜증나고, 덥고, 배고프고, 답답하고, 한심하고, 소외받고 하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아, 분노의 감정이라고 표현하는게 적당하겠다. 나는 지금부터 내가 이러한 구리구리한 감정상태를 소유하게 된 8가지 이유를 소개해보겠다. 일종의 분노의 블로그질인 셈. 블로그질은 분노의 감정을 절제하는데 도움이 된다 :)

내가 알고 있는 한, 차인표씨는 언제나 분노하고 있는 모습이다. :)

 

3. 어제 나는 고운누나, 보희와 함께 Filadelfia행 버스를 탔다. '마음맞는 이들'이 종환이가 봉사하는 기관인 Amistad 초등학교에 도서환경을 조성해주고자, 교장선생님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적당한 도착시간을 고려해서 이들은 먼저 마리스깔에 도착했고, 나는 이들과 함께 필라델피아에 동행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한국말도 하면서 밥도 먹고, 콜라 맛이 쓰디 쓴 하우스 분위기도 내보았다.

아미스닫에서 삼겹살 구워먹기. 살면서 가장 야성적으로 삼겹살을 먹었다.

 

(첫번째 이유)

4. 하지만 나는 그날 밤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학교 선생님 한 분의 딸내미가 낀세(15살 생일, 파라과이에서는 조금 성대하게 치룬다)파티에 사진을 찍어달라고 초대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과 필라델피아에 가기로 선약이 잡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표했지만, 자신도 너의 '친구'이고, 'malo'(나쁜, bad)라고 하도 하시기에 어쩔수 없이 가게 되었다. 뭐, 여기까지는 좋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했듯이, 사진을 찍어주면 사람들이 행복해한다. 하지만 봉사자는 무조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당연스럽고 당당한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번째 이유)

5. 결국 어제 저녁 열시 반쯤, 낀세 파티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었다. 역시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이 막 번갈아가면서 찍어달라고 하였다. 아무렴 좋다. 하지만 깜깜한 저녁에 열심히 몸을 흔들어가며 춤추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다니! luz(빛)가 모자라다고 해도, 소용없다. 결국 유체이탈(?) 같은 것좀 시켜 주고, Bueno, ya esta. (됐어, 다 찍었어.) 해주시다. 

오른쪽 드레스 입은 소녀가 낀세 파티의 주인공!

 

6. 사진도 찍어주고, 아사도도 함께 먹으면서 즐겁다기 보다는, 나는 결국에 어쩔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나를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과라니어, 맥주잔치, 춤문화... 처음에는 새로운 문화를 낭만적으로 바라보게되어 좋았는데, 조금이나만 적응한 요즘은 오히려 이들의 문화에 녹아들기가 더욱 어렵다.

 

(세번째 이유)

7. 내가 늦은 저녁에 낀세 파티에 가게 된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올 때 데려다 주는 것. 하지만 내게 사진을 부탁한 선생님은 12시 정도가 되자 주무시러 갔는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둘 씩 다들 떠났다. 집까지 1시간을 걸어가야 하는데, 나는 엄청 졸립고 피곤했고, 정전 때문에 칠흙처럼 어두웠다. 정말 막막한 감정. 차라리 데려다준단 말을 하질 않았으면, 내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을텐데 말이다. 

 

(네번째 이유)

8. 결국 성당 아눈시오 신부의 차를 약 새벽 2시에 얻어탔다. 얻어 타기 정말 힘들었다. 아눈시오 신부는 정말 놀고 싶었던 것 같다. 12시 쯤에 정전이 되어, 정말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의 차로 라이트를 키고, 음악을 틀어 젊은이들이 춤추기를 독려했다. 뭐 여기까지는 역시나 좋다. 하지만 아직 14살밖에 되지 않는 여자애 허리를 잡고 격렬하게 춤추는 모습을 볼때에는 참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12시에 시작한 아눈시오 신부 배 댄스대회는 2시까지 계속 되었다. 정말 재밌었던 건, 한 곡이 끝날때마다 ultimo(막판이야), dale(좋아, 좋아), baile(춤춰)를 계속해서 외쳐댔다는 거. 그걸 진짜 마지막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나에게 2시간이 기대와 좌절, 절망의 순간이었다.

 

(다섯째 이유)

9. 나는 그 두시간동안 잘못된 위치선정을 했다.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나고, 의자도 얼마 남지 않아 나는 74살 할아버지 옆에 앉게 되었다. 많이 취하신 상태였지만, 나에게 과라니어를 많이 가르쳐주고 싶으셨으리라. 2시간 동안 다소 폭력적인 과라니 과외가 진행되었다. 쉬는시간은 단 1분도 주어지지 않는 강력한 몰입학습이었지만, 지금은 단 한개도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현지훈련때 과라니 교수법의 대가, 디오니시오 아꾸냐 선생님의 수업처럼 말이다. :)

 

(여섯째 이유)

10. 자, 아눈시오 신부 주최 댄스 파티가 끝이 났다. 그리고 신부가 나에게 하는 말. "Corea, Vamos!" 이 때, 기분이 젤 많이 상했다. Corea라니. 물론 보잘것 없는 내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면 좋은 것이지만. 실컷 내 이름 알려줬고, 잘 알고 있으면서. 내 스페인어 이름과 알파벳 철자 하나도 겹치지 않는 Corea라니. 정말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걸어갈 수 없다는 현실적 소시민의 정신을 되찾았다. (내 머리에서 투쟁의 정신을 솎아낸지는 오래 전의 일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Paraguay라고 불러보리라. 이 분 조금 취했는지, 졸렸는지, 집에 오다가 사람 칠 뻔했다. 정말 식겁했다!

 

(일곱째 이유)

11. 12시에 시작된 정전은 오늘까지, 약 17시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정전은 단수와 함께 온다. 정말 더웠다. 이 곳 파라과이 생활에서는 에어컨 없이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찬물로 씻지도 못하고! 쌀밥도 없어, 밥도 못먹고... 결국 아점은 어제 필라델피아에서 챙겨온 삼겹살 4줄로 처리했다. 총 7줄 중에 가장 성해 보이는 4줄을 먹고, 색깔이 안 좋은 3줄은 우리 프레시오사가 처리했다.

프레시오사는 한국의 삼겹살을 맛보았다. 무엇이 부족한지 표정이 조금은 서큼서큼했다.

 

(여덟째 이유)

12. 물이 나오고, 전기가 들어왔다. 에어컨을 키고 분노의 집안인을 시작했다. 녹아내려버린 냉장고 위아래를 깨끗이 닦아내고, 탄력받아 냉장고 정리도 했다. 설거지도 하고, 얼음이 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려 더러워진 바닥에 걸레질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상큼하게 김훈의 '남한산성'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곧장 열이 받았다. 주화를 신실하게 주장했던 최명길이 정치상황에 의해 왜곡되는 모습을 보며, 조금 분노의 감정을 품은 것이다. 나는 주화도 척화도 아닌 평범한 독자이지만, 최명길의 진심이 철저히 짓밟히는 모습에 괜시리 마음이 조금 서렸다. 그리고 김훈의 소설은 언제나 조금은 읽기 벅차다. 기대수준이하인 나 자신에게도 조금 울화가 뻗친 것일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