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의 배신(박남기) / 실력주의를 넘어 신실력주의 사회로

2019. 1. 19. 15:03책읽기와 책쓰기/교육



저자 박남기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실력주의를 넘어 신실력주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저자는 광주교대 총장을 역임한 교육행정학자이다. 교육학자인 저자가 교육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에 집중한 점이 필자에겐 자못 흥미롭게 느껴졌으며, 다른 한편으론 우리 교육을 사랑하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까지 엿볼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실력주의 사회란 사회가 합의한 개인의 실력을 기준으로 사회적 재화와 지위를 배분하는 사회(p112)’이다. 실력주의 사회에서는 재화와 지위의 희소성 때문에 발생하는 경쟁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일반적으론 학교에서의 학업 능력)에 따라 분배함으로써 해결해간다. 이는 관념적으로 매우 옳고 공평하여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실력주의의 추구는 그것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역설적인 부작용을 낳게 된다. 저자는 이를 실력주의의 그림자라고 지칭하는데, 1) 개인이 성취한 재화와 지위는 자신의 실력에 의해 공정하게 배분받은 것이므로 마땅히 그 권리를 개인이 독식해도 된다는 인식, 2) 실력이 대물림 되어 사회의 재화와 지위가 특정 계층에 편중되는 양극화의 악순환 현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실력주의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미덕으로 여기는 노력에 대해 깊게 파헤친다. 일반적으로 실력은 노력함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실력 형성 과정은 보다 복잡한 모델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저자가 제시하는 실력공식과 성공공식을 보면 실력과 성공의 변수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실력공식 (p58)

실력=타고난 능력×{노력+교육(학교교육+사교육)+비실력적 요인(가정 배경+)}


성공공식(p61) 

성공=실력+비실력적 요인{개인 특성(타고난 특성+길러진 특성)+기타(가정 배경+)}


위의 공식들을 보면 실력 형성과 성공 여부는 각 개인의 의식적인 노력에만 달려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며 공부에는 DNA가 중요하다는 손사탐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따라서 저자는 1) 실력은 노력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실력으로 얻은 재화와 지위를 일정 부분 사회 공동체에게 나누는 공동체 인식을 가져야 하며, 2) 실력 형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과정은 아니기에 이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회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력주의의 그림자는 우리 사회가 실력주의를 과도하게 추구하여 벌어진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실력주의의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서 실력주의를 더 엄격하게 추구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회 지도층의 갑질 논란, 가정 배경을 수저 색깔로 표현하는 금수저, 은수저 이야기가 우리의 입에 오르내릴수록, 부조리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계급장을 떼고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를 보자며 실력주의를 더욱 부추긴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대부분 사람들이 현재 우리 사회가 실력주의를 충분히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며, 실력주의의 그림자 문제는 실력주의를 이전보다 더욱 이완되고 느슨하게 적용하여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욱 완벽한 실력주의의 추구는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이완되고 느슨한 실력주의. 이것이 바로 필자가 파악한 저자의 신실력주의. 저자는 아래와 같이 신실력주의를 설명한다.


신실력주의 사회란 실력과 대학 및 직업 배분 사이의 연결 고리는 유지하되, 직업과 보상 사이의 연결 고리는 줄이는 사회다. (중략) 근로 의욕은 유지시키면서도 직업 간 사회적 재화 분배 차이를 줄이는 제도적·사회문화적 보완 장치가 마련된 근로의욕고취형 복지사회가 바로 신실력주의 사회다. (p153)


, 신실력주의 사회는 실력에 따라 재화와 지위를 분배하되 자신의 노력이 아닌 신이나 가정, 사회로부터 얻은 것들은 기쁜 마음으로 공동체를 위해 나누는 사회, 따라서 경쟁에서 뒤쳐졌다 할지라도 충분히 행복하게 생활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노동시장의 이원화(정규직과 비정규직)와 양극화(대기업과 주오기업)가 극심하다.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면 급여 및 직업 안정도가 크게 떨어진다. 설령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더라도 유럽 복지국가처럼 삶의 질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데 그렇게 민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면 삶의 수준에서 차이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p218)


그렇다면 신실력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교육자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교사가 교사에게>의 저자 이성우는 교육은 철학과 신념의 문제라고 하였다. 필자의 생각에 학교 교육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현재 학교에 재학 중인 미래의 부자들, 미래의 실력자들의 마음을 설득하는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장차 가질 재화와 지위는 그들의 노력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일깨우고, 나눔의 마인드를 지니도록 돕는 것. 저자 박남기는 이 땅의 교육자들이 그러한 역할을 더욱 본격적으로 해주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