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대니얼 윌링햄) / 교육의 근거로서의 인지과학

2019. 2. 9. 00:51책읽기와 책쓰기/교육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인간의 기본 인지 원칙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그것이 학교 수업에 주는 함의를 밝히는 책이다. 저자 대니얼 윌링햄이 제시하는 9가지 인지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인간은 본래 호기심이 많지만 생각하는 재주는 뛰어나지 않다.

2. 사실적 지식이 기술보다 앞선다.

3. 기억은 생각의 잔여물이다.

4. 우리는 아는 것에 비추어 새로운 개념을 이해한다.

5. 숙달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6. 훈련 초반의 인지는 훈련 후반의 인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7. 학생들이 생각하고 학습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기보다는 비슷하다.

8. 지능은 꾸준한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9.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술도 다른 복잡한 인지 기술처럼 연습해야 발전한다.


저자 본인이 책의 결론에서 직접 정리하였듯이, 위의 9가지 중 1~3번째 원칙은 새로운 문제를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해, 4~6번째 원칙은 전문성에 관해, 7~8번째 원칙은 학생들의 차이에 관해, 마지막 9번째 원칙은 교사의 교수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각각의 원지과학적 원칙이 학교 교육에 시사 하는 바를 아래와 같이 어렵지 않게 추론해낼 수 있을 것이다.

1) 중간 난이도의 과제를 제시해야 한다.

2) 사실적 지식을 더욱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3)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을 생각하도록 수업을 계획해야 한다.

4) 지식(개념)의 풍부는 지식의 추상적 이해(심층구조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5) 꾸준한 연습(자동화)은 작업 기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6) 학교는 지식 창조가 아닌 지식 이해의 공간이다.

7) 지능은 가변적이기에 끌어올릴 수 있다.

8) 학생을 칭찬할 때에는 그들의 능력이 아닌 노력을 칭찬해야 한다.

9) 교사가 꾸준히 연습한다면 교수법을 충분히 향상시켜 나갈 수 있다.


교육과 관련한 도서를 꾸준히 읽은 독자라면 저자 대니얼 윌링햄의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만큼 그의 교육에 대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다른 대중적 또는 학술적인 문헌에서 인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사실적 지식 학습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교육 모델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쓰인다. (최근 공교육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령 윌링햄의 주장은 지식교육을 경시하는 현대 교육의 시류를 비판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데이지 크리스토둘루>의 훌륭한 과학적 뒷받침이 되어 주었다.

참고링크: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리뷰 / 역량의 시대에서 지식을 대변하다. 


인지과학자인 대니얼 윌링햄이 주장하듯이 생각은 정보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작업이다. ‘추론이나 문제 해결 같은 비판적 사고 과정은 환경에서 들어오는 정보만이 아니라 장기 기억에 저장된 사실적 지식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생각을 잘하려면 사실을 알아야(기억해야)’ 한다. “정보(사실적 지식)를 써먹을 수 있는 사고 기술을 갖추지 못하면 정보가 아무 소용이 없듯이 정보를 머릿속에 갖고 있지 못하면 사고 기술을 제대로 써먹을 수 없다라고 하는 윌링햄의 말을 교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실력의 배신 319p, 박남기)


우리는 교과 수업이나 활동 중에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을 생각하도록 수업 계획을 세워야 한다. (중략) 윌링햄은 장기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지심리학 연구가 교사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수업 중에 무엇을 생각하도록 수업 계획을 수립했는지 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p180, 데이지 크리스토둘루)


이 책은 교사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볼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교사들은 자신들의 교육 활동을 직감적으로는 옳고 적절하다고 결론내리면서도, 그것의 당위성을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철저히 변증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교사들은 토론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토론 주제와 관련된 지식을 전수하는데 힘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더 많은 시간을 토론 활동에 할애하지 못하였음을 늘 반성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교육자치의 시대를 맞이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통념이 교육현장을 좌지우지할 때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흔히 주입식 교육을 떠올린다. 하지만 학교 교사들은 지식 학습에서 관계적 이해를 누구보다 중시하며, 흔히 주입식 교육이라 생각하는 강의식 수업은 단점 못지 않게 장점도 많다.) 하지만 올바른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통념은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미신myth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교사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뇌의 학습과 기억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학습한다면, 논리적으로 중무장되어 자신들의 교육활동을 충분히 변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학습의 주체는 이며, 인지과학자들의 뇌에 관한 연구는 대단히 경험적이고 실증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 독자들은 이 책 곳곳에서 자신들의 교육 활동이 과학적으로 옳다고 증명될 때마다 통쾌함을 느끼며, 공교육을 힐난하고 교사를 죄인 취급하기 용이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다시금 교사로서의 긍지를 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씩 들먹이는 저자의 유머코드도 꽤나 세련된 편이며, 책의 번역 또한 수준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