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한 스페인어 사전

2012. 12. 3. 12:13KOICA 해외봉사활동/사랑하고, 살아가며 2012

  시간이 지리하게 흘러간다. 방학이 벌써 1달이 지나갔다.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별다른 할 거리가 없는 요즘은 하루하루가 답답하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나마 꾸준히 하던 출근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존해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햇빛 쨍쨍, 비 주룩주룩. 호랑이님 장가드시는 바람에 습기 차는 더위가 찾아왔다. 내 정신이나마 조금 서늘하도록,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스페인어 단어 몇 개를 소개하고 스스로 미소 짓고 싶다. :)

 

 

1. Traquilo(뜨랑낄로): 마음에 부족함이 없는 평온하고 느긋한 상태

 

(해설)

  파라과이는 뜨랑낄로의 나라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그렇듯이, 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느릿느릿 일처리를 하면서도 대책 없이 낙천적이다. 손에 잡히도록 설명을 해보자면, 3개월 전에 시작한 우리 집 지붕 공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5개월 전에 현지인에게 빌려 쓴 물건은 제발 좀 찾아가라고 말해도, 아직까지 우리 집에 딱 비치되어 있다.

  정말 짜증나는 경우다.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 이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오늘 하루를 즐기고 살면 될 것이지, 피곤하게 일을 재빠르게 진행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포기하는 법을 학습하는 한국인들 중 이 뜨랑낄로의 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뜨랑낄로가 속 시원하게 유쾌하게 다가오는 경우는 대화중에 긍정을 표현하는 'Si'(Yes)를 대체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내가 조금은 어려운 부탁을 했을 때, ‘뜨랑낄로!’라는 응답은 정말로 마음을 시원케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음절 하나하나를 끊어서 특유의 박력으로 내뱉는다. 아주 매력적이다.

(예문1)

꼬레아노: (미안해하며) ...... En proyecto TESAPE'A, tengo que cobrar todo. Creo que es muy caro para mi. Por eso, quiero pedir precio especial. Se puede 25 por ciento descuento? (이번 문맹교육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의 쿠폰은 내가 다 재구입해야해. 그건 나에게 너무 비싼 것 같아. 혹시 나한테 특별가격 적용해주면 안돼? 25퍼센트 할인!)

파라과죠: Um, Tranquilo! (뜨랑낄로!)

꼬레아노: :)

 

 

이 뜨랑낄로는 주고받는 인사에서 Muy bien(좋아, I'm fine)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예문2)

꼬레아노: Hola, que tal? (안녕, 잘지내니?)

파라과죠: Tranquilo! (뜨랑낄로!)

 

 

2. Igual nomas(이구알 노마스): 쌤쌤이네, 그게 그거야.

 

(해설)

  ‘igual(이구알)’은 ‘상등하다’는 의미로 영어의 ‘equal’과 같다. 'nomas(노마스)'는 영어의 ‘just’와 비슷하다. 다시 두 단어를 합쳐보면 ‘igual nomas(이구알 노마스)'는 한국어로 ‘똑같지 뭐’, ‘쌤쌤이야’, ‘이거나 그거나’ 정도의 의미가 된다.

(예문1)

파라과쟈: (베소를 하려고 하며) Hola. como estas? (안녕? 잘 지내?)  

꼬레아노: (베소 싫어...) Muy bien. Umm, mi cara esta un poco sucia. (아주 잘 지내. 근데 내 얼굴 좀 더러워서...)

파라과쟈: Igual nomas. (똑같지 뭐, 상관없어)

꼬레아노: ㅠㅠ

참고: 베소는 남녀간, 여성간에 볼을 대고 입 맞추며 하는 인사. 참고로 나는 베소 싫어한다.

 

  파라과이에서는 /s/ 발음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igual nomas'는 ‘이구알 노마’로 발음한다. 한글의 ‘(이)놈아’와 거의 발음이 똑같다. 한국인으로서 유쾌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내 말에 토를 달고 늘어지는 놈이 발견되면 ‘이구알 (이)놈아!’라고 내뱉어주면 된다.

(예문2)

파라과죠: David, me gusta mas asi que esto. (다비드, 나는 이것보다는 이렇게 하는게 훨씬 좋아.)

꼬레아노: (짜증내며) Igual nomas. (그게그거지, 이놈아!)

파라과죠: -_-

(예문3)

파라과죠: (지나가며) Hola, que tal? (안녕, 잘지내?)

꼬레아노: Bien, nomas. (좋아. 근데 지나가는데 귀찮게 인사 좀 하지마라 이놈 자슥아.)

똑같아 이놈의 자슥아!

 

 

3. Cualquier cosa(꾸알께르 꼬사):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해설)

  '꾸알께르 꼬사(cualquier cosa)'는 영어의 'whatever'라고 생각하면 꼭 맞다. 다만 상황에 따라 종종 사용되는 whatever의 냉소적인 의미는 해당되지 않는다. 보통 파라과이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나서, 앞으로도 무엇이든지 부탁하라고 쿨하게 말할 때 사용한다. 가슴 속까지 시원케 하는 단어이면서도 동시에 가슴 속을 뜨끈하게 해주는 조금은 이상한 단어다.

(예문)

꼬레아노: Gracias por ayudarme. (도와줘서 고마워.)

파라과이: Bueno. Cualquier cosa, avisame. (별걸. 뭐든지 부탁하라구.)

꼬레아노: :)

 

 

4. Vamos(바모스): 가자!

 

(해설)

‘바모스(vamos)'는 영어의 ’Let's go' 또는 ‘Let's do it' 정도의 의미이다. 이 단어는 오토바이와 연관되는 상황에서 특별히 생동감이 넘친다.

(예문1)

꼬레아노: (땡볕 밑에서 걸어서 출근중) ......

파라과죠: (지나가던 오토바이 멈추며) Que paso? (무슨 일이야?)

꼬레아노: ㅠㅠ

파라과죠: Vamos! (오토바이 뒤에 타!)

꼬레아노: :)

(예문2)

꼬레아노: (슈퍼마켓 카운터에서 계산 중)

파라과죠: Hola, David! Vamos! (다비드, 태워다줄게. 가자)

꼬레아노: :)

 

 

5. Solucion(쏠루씨온): 문제해결!

 

(해설)

  Soulucion은 우리말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영어의 ‘solution'과 같은 의미이다. 이 단어는 정말 간단하게 사용된다. 발생한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파라과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쏠루씨온(solucion)’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고 흥겹게 ‘solucion'이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예문)

꼬레아노: En mi casa, no hay luz. Que paso? (우리집 정전됐어. 뭔일이야?)

파라과죠: Cabraste tu factura? (전기세 냈어?)

꼬레아노: Clara. (당연하지.)

파라과죠: Voy a ver. (내가 한번 봐볼게.) ...... SOLUCION!! (해결됐다!!)

꼬레아노: :)

 

 

  엉터리 유쾌한 사전을 만들어보면서 두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처음 생각은 파라과이 친구들 참 답답하고 밉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이들로부터 참 많은 도움을 받았구나! 그 후론, 이 저녁에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현실파악, 한심하면서도 재미있다는 것. 내가 내일 집 밖으로 나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파라과이 친구들에게 좀만 냉정하고 좀더 따뜻한 사람해야겠다. chao chao

 

*** 참고로 위의 예문에서 사용한 스페인어는 모든 문법을 파괴한 구어체 중심으로 사용했음을 알립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