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이유

2013. 1. 17. 12:30KOICA 해외봉사활동/성인문해교육 (TESAPE'A)

1. 제가 발행하는 쿠폰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학생들은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상점에서 계약했던 제 쿠폰을 받기 싫어한다는 둥, 4000과라니는 너무 조금이라서 안된다고 말했다는 둥, 쿠폰을 들이미니 주인이 비웃었다는 둥, 그래서 상점의 주인들과 이야기해보니 아무도 쿠폰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둥, 그들은 너의 아이디어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둥, 스페인어말고 니바끌레어로 꼭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둥, 자신의 계약내용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이라는 둥...... 학생들과 상점의 주인들의 서로 다른 말들이 둥둥 떠다니면서 마음을 복잡하게 했습니다.

 

2. 그래서 지난번 글을 작성했던 것처럼, 학생들이 생각하는 가장 착한 가정상점 하나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수업 끝나고 저랑 함께 떼로 습격하기로 했지요. 이거 일종의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이 세세한 소비현장까지 다 따라다녀야 한다니...... 조금은 귀찮았지만, 그들이 왜 부끄럽다고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3가지인 것 같습니다.

 

 

3. 학생들은 쿠폰 자체를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주머니 속에는 파라과이의 공식적인 화폐 과라니가 아닌, 웬 이상한 한국인 하나가 건네준 쿠폰들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쫑알쫑알 써놓고 테이프로 대충 똘똘 감아버린 쿠폰 말이지요.

 

4.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과 함께 가정상점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상점에 들어갔지만, 아니 이 사람들 무슨 죄 지은 것도 아니고 상점 밖에서 수줍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pasa nomas! pasa!’(들어와요, 들어와요!) 라고 하니 그제서야 들어옵니다. 수업 때도 그렇지만 참 이 사람들 선험적인 수줍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들은 것 처럼 가정상점에서 이 사람들 무시하고 비웃거나 하는 것 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면이 더욱 크게 보입니다. 쿠폰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건데 말이지요. 아쉽습니다.

 

 

5. 제가 가정상점의 가격제시 방법까지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르게 이 곳 가정상점들에서는 각 항목에 대한 각각의 가격을 적어놓지 않습니다. 주인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럴 경우 가격을 적어 놓은 노트를 함께 참고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물건을 골라도 어느 정도가 8000과라니가 될지, 12000과라니가 될지 정확하게 예측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물건을 골라서 쿠폰을 내놓으면, 돈이 딱 떨어지지 않고 어딘가 부족하거나 남게 됩니다. 그리고 돈과 물건을 알맞게 조정하기 위해서 주인들과 이야기하게 되지요. 안그래도 당당하지 못한 마당에 카운터에서 부드럽게 결재가 진행되지 못하니 부끄러운듯 보였습니다.

 

6. 학생들은 아줌마들인데 가정상점의 가격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지 않냐구요? 그게 안그렇더라구요. 그리고 가격이 제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고르기 전에 먼저 물어볼 수 있지 않냐구요? 이상하게 그게 안그렇더라구요.

 

 

7. 그리고 아주 결정적인 점은 학생들이 더하기, 빼기를 잘 못하더란 겁니다. 예를 들면, 학생 한 분이 6,000과라니 어치의 물건을 골라 와서 쿠폰 2장을 내놓았습니다. 상점의 주인은 2,000과라니 어치의 물건을 더 골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피식 웃으면서 쿠폰 한 장을 더 내놓습니다. 다시 한 번 2000과라니 어치의 물건을 더 골라오라고 말하니, 수줍게 웃으면서 한 장을 더 내놓습니다.

 

8. 그래서 골라온 물건들과 쿠폰의 금액을 알맞게 조정할 때, 덧셈뺄셈 계산이 잘 안되니 계산대 통과가 복잡해져버리게 됩니다. 먼저 구두로 가격을 물어보지 않는 이유도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걸 파악하고 거의 계산대 캐셔로 활동했더랍니다. 주인이 계산기 두드리기 이전에 한국인 특유의 주판 머리를 발동시키고, 딱딱 계산해서 어떻게 조정하면 될지 알려주니 훨~씬 상황이 나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덕분에 집에 한시간 늦게 갔습니다. ㅠㅠ

 

 

9. 그래서 사실 쿠폰제도를 관둘까도 생각했습니다. 요즈음 함께 공부하는 정예 멤버 12명은 정말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오는 것 같았거든요. 선생님 닮아서 시크하신 학생분들은 확실히 오직 쿠폰 때문에 수업에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배우고 싶어서 온다지만,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온전하게 두 달을 이끌어가기엔 조금 어렵지 하는 결론입니다. 하루는 제가 까먹고 쿠폰을 드리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죄다 돌아와서 오늘 쿠폰 못받았다고 말하더라구요. 쿠폰 대신 현금을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쿠폰 자체가 정말 창피한거라면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현금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가격 조정과 간단한 연산은 필수적입니다.

 

10. 당분간은 저와 함께 떼로 가정상점을 습격해야겠습니다. 조금 더 당당하도록! 그러려면 어깨를 펴야 하는데 저는 어깨가 좁으니깐 이제부터라도 팔굽혀펴기를 해야겠네요. 상점을 한 곳으로 설정한 것은 참 잘한 결정인 것 같습니다. 주인과 친해지고, 잘 말해두어야겠습니다. 안그래도 혹시라도 절대 쿠폰보고 웃지말라고는 이야기해두었습니다.

 

11. 조금 더 계산대에서의 계산이 편해지도록, 쿠폰을 잘게잘게 쪼개볼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1000과라니 어치의 쿠폰을 여러 개씩 드린다면, 조금 더 편하게 상점 주인이 주도적으로 계산해낼 수 있겠지요. 거스름 단위가 자연스레 줄게 되니깐요. 그리고 언제 시간을 내어서 기본적인 더하기 빼기 방법은 꼭 공유해야겠습니다. 꼭 필요할 것 같아요.

 

12. 조금 복잡해졌네요.

 

13. 그래도 수업은 참 재밌습니다.

 

14. 화이팅. 나도 너도.

 

수업에 아이들도 달랑달랑 따라옵니다. 쉬는시간에 축구팀 컨셉으로 한컷.

 

간단한 회화문장학습. 문법상 올바른 음절분해방법은 아니지만, 내가 자랑하는 최고의 음절분해방식!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