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은 낄낄낄

2013. 2. 15. 13:11KOICA 해외봉사활동/성인문해교육 (TESAPE'A)

1.

  누군가를 웃기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조망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찬찬히 잘 읽어내고 있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쑥 내밀게 되면, 무방비상태였던 그는 낄낄낄 내장기관이 불편하게 부대끼는 소리와 함께 입 꼬리를 올리게 될 수밖에 없다. 마치 길 모퉁이에서 숨어 기다리다가 뛰어오는 친구 놈을 놀래켜 주는 것처럼 말이다.

 

2.

  고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만 있으면 모국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개그를 칠 수 있다. 고로 유머는 전지구적으로다가 보편적이다. 돌아가는 담화상황에 대한 맥락 콘텍스트만 비슷하다면 한국에서 웃긴건 파라과이에서도 웃긴다.

 

3.

  요즘 아줌마 학생분들과 회화문장들을 공부한다. 엄격하게 말해서 공부한다기보다는, 회화문장을 가지고 배운 철자를 적용해보고, 단어를 읽어보는 연습을 한다. 한국의 회화책 본문들을 이용하는데 다음과 같은 대화문이 있었다.

  a: mi esposo bebe mucho alcohol todos los dias. (내 남편은 맨날 술을 진창 마셔)

  b: casi nunca cena en casa? (그럼 저녁을 집에서 거의 안먹니?)

  a: no, casi no. a veces bebe demasiado. (응, 거의 안먹어. 때때로 술에 아주 쩔어있어)

  b: mi marido siempre desayuna y cena en casa. (내 남편은 항상 집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어)

 

4.

  남편이 술을 매일 마신다는 첫 문장을 연습할 때부터 아줌마들이 수군수군하며 웃기 시작한다. 그리고 때때로 아주 술에 쩔도록 많이 마신다는 문장에서 좀 더 낄낄대시고... 아저씨들 겁나게 술 많이 마시긴 하나보다. 아줌마들 오랜만에 참 즐거워하시길래 한국 아줌마들이 좋아할만한 개그 날려드렸다.

  es seguro de que el marido que siempre come desayuno y cena en casa es mas malo que otro. el come mucho!(집에서 꼬박꼬박 아침저녁 챙겨먹는 남편이 술 진창 마시는 남편보다 더 나쁜 것 같아요. 진짜 많이 먹잖아요!)

대화문 판서. 나만의 음철 분해법으로 가르친다. 요즘에는 색깔 분필로 분해 안시켜줘도 읽어내는 5-6명의 학생들이 생겼다!!!

 

5.

  낄낄낄

 

6.

  요즘엔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가만 이 사람들이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인가 싶을 때가 많다. 어제는 수업 중에 교실 속으로 벌들이 자꾸 들어와 아주 난리가 났다. 어른이면 점잖게 벌을 왕따시켜 버릴 만도 한데, 막 니바끌레족 특유의 ‘으-쉬’, ‘아-쉬’하는 소리를 내가며 벌을 잡고, 피하고, 웃고 아주 난장판을 만들었다. ‘나 수업하잖아요 아주머니?’라고 속으로 생각만 계속 곱씹으며 보니, 아이고 내가 진짜 초등학교 교실 속에 있는 것만 같다. :)

 

7.

  오늘은 수업 중에 비가 왔다. 집에 돌아갈 일이 걱정인지 또 ‘으-쉬’, ‘아-쉬’하면서 창문 밖을 쳐다보기 바쁘시다. 집중력은 그야말로 제로! 나도 집에 갈일이 걱정이라 똑같이 마음이 붕 떠서 산만한데 갑자기 번개가 쳤다. 어떤 아주머니 놀라셔서 꺄악 높은 소리 내시다.

 

8.

  usted hizo mal mucha cosas. por eso nomas tiene miedo de rayo. (아줌마 나쁜 짓 많이 해서, 무서워하는거에요)

 

9.

  낄낄낄

 

10.

  그래서 수업은 어떻게 됐냐고? 비가 천장을 계속해서 세차게 내려치자... ‘parece que hay que salir...?(아무래도 지금이라도 집으로 가야하겠죠?)’라고 조심스럽게 떠보니, 다들 엉덩이 들고 당차게 떠나버리셨다.

 

11.

  낄낄낄. muy amables son.

블로깅은 매일 12시 넘어서 하게된다. 개학도 해서 피곤. adios. buenas noches~~

 

 

끝.